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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임기 마무리하는 박승 한은 총재
입력2006-03-09 14:23:32
수정
2006.03.09 14:23:32
콜금리 동결 결정이 내려진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끝으로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통화정책의 방향을 발표하고 시장에 금리정책에 관한 신호를 보내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듯 하다.
이달 말로 4년 임기가 만료되는 박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앞으로의 금리정책에 대해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라서..."라는 표현을 썼다.
보기에 따라서는 향후 콜금리 조정 가능성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기 곤란하다는 뜻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박 총재 스스로가 연임 없이 임기만료와 함께 퇴임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달 이후 금통위에서 통화정책 방향은 후임 새 총재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는 뜻이다.
2002년 4월 이후 지금까지 총 48회의 금통위를 주재한 박 총재는 모두 8차례 콜금리를 조정했으며 정확히 4번씩 콜금리를 인상하고 인하했다.
콜금리가 연 4.00% 이던 때 취임, 곧 바로 4.25%로 올렸다가 이후 계속 낮추면서 3.25%까지 떨어뜨렸지만 최근 4.00%로 원위치 시켜 놓고 임기를 마치는 셈이다.
그동안 과소비 거품경제와 그 후유증인 장기 내수불황도 겪었고 외환보유액은 2천억달러를 돌파했는가 하면 저금리의 폐해로 실물부문의 과열 현상도 없지 않았다.
교수 출신인 박 총재는 이 과정에서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거침없는 속내를 표현,시장을 엉뚱한 방향으로 출렁이게도 했지만 임기 막바지에는 시장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점수를 만회한 편이다.
◇통화정책의 독립성 강화
박 총재 취임 초기에는 간혹 금통위 안건이 사전 한은 집행부와의 의견조율과는완전히 딴 판으로 의결되는 일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정부 수뇌부에서 일부 금통위원에게 `의중'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다.
콜금리를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면 재경부 수뇌부가 청와대의 힘을 동원해 금통위의 금리인상 시도를 무산시키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11월에는 한은 집행부가 콜금리 동결을 주장한 반면 금통위원들은 금리인하를 주장, 표대결 끝에 한은 집행부 의견을 압도했으며 박 총재는 간접적으로 이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3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때는 재경부에서측면에서 집요하게 `노이즈'를 날려보냈지만 모두 금리인상에 성공했다.
임기말 금리인상 기조 때는 박 총재가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통화정책을 이끌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한은과 재경부의 힘겨루기에서 한은이 이긴 것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라는게 한은 주변의 평가다.
박 총재 임기초반 정부의 입김에 금통위가 간혹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박 총재가 정부측과 긴밀히 접촉, 상호 의견을 조율했으며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때로는 배짱과 뚝심을 유지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의 3차례 금리인상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게 박 총재가 정부쪽을 설득, 무난하게 마무리했다는 후문이다.
이로 인해 채권시장에서도 과거 재경부 당국자의 발언에만 주파수를 맞추던 관행이 금통위의 시그널에 더 집중하는 쪽으로 변모했다.
◇ 잇단 설화로 곤욕..'박승자박'
박 총재의 임기중 거침없는 입담은 숱한 화제를 모았으나 그만큼 설화(舌禍)도수차례 겪어 한때는 '박승자박'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였다.
부동산파동이 한창이던 지난 2003년 9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논란이 되기도 했고 채권딜러들에게 '철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꾸짖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총재가 4년 임기중 쏟아낸 갖가지 발언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전세계 금융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 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했던 이 사태로 인해 '오럴해저드(Oral Hazard)'라는비난을 받았고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의원들로부터 사퇴압력까지 받았다.
이런 파문이 가라앉은 후에는 박 총재 스스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은과 우리나라의 파워가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국내경기 침체기로 평가됐던 지난 2004년 8월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평점으로매기라고 한다면 A마이너스 정도"라고 밝히는 등 시종 밝은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미스터 낙관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이날 마지막으로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이달부터 환율이 오를 거라는 전망을 지난달 내놓았는데 결과적으로 맞춘 셈"이라며 "예상이 틀렸으면 언론이 대서특필 했을텐데 맞춘 것은 왜 안 써주냐"며 특유의 입담을과시했다.
◇ 경제성적은 '무난'..물가-콜금리 '본전'
박 총재가 취임한 지난 2002년 3월 이후 지금까지 4년간 국내경기는 대체로 '호황-침체-회복'으로 요약된다.
우선 경제성장률의 경우 첫해인 2002년에는 무려 7.0%에 달하던 것이 2003년에는 3.1%에 그치면서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2004년(4.6%), 2005년(4.0%)에는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
또 지난해 말부터 내수를 중심으로 경제가 살아나면서 올해 5% 성장 가능성이높은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떠날 수 있게 됐다.
한은의 최대 임무 가운데 하나인 물가안정의 측면에서도 박 총재는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2년 2.7%에 이어 2003년과 2004년에는 모두 3.6%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다시 2.7%로 적정물가 수준을 유지했다.
박 총재의 취임 당시 콜금리가 4.00%이던 것이 최고 4.25%, 최저 3.25%까지 등락을 거듭하다가 퇴임을 앞두고 6개월간 3차례의 이상을 통해 4.00%로 복귀한 것과같이 공교롭게 물가도 처음과 끝을 맞춘 셈이 됐다.
그러나 환율의 경우 지난 2002년 1천300원대에서 4년만에 980원대로 미끄러지면서 '본전 찾기'에 실패했다.
환율방어를 위한 시장개입의 여파로 외환보유액은 2천억달러를 넘어선 반면 통화안정증권 발행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지난해 한은의 적자규모가 2조원에 달하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 절반의 성공, 화폐제도 개선
박 총재는 평소 재임중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성과로 한은법의 통과에 따른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된 것을 꼽는다.
반대로 화폐액면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을 포함한 화폐제도 개선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못내 아쉬워 한다.
정부와의 절충으로 위.변조 방지 기능을 보강하고 지폐의 품질을 개선, 23년만에 지폐의 도안과 크기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에 만족해야할 따름이다.
박 총재는 그러나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이 단행돼야 한다는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후임 총재의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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