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금융감독당국과 은행 실무자들이 모여 늦은 밤까지 해결책을 논의했지만 마땅한 절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은행들은 “수탁은행의 펀드 미수금 우선 지급은 사실상 대출행위에 해당돼 수탁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미수금의 가장 중요한 항목인 배당금의 경우 미리 예상하기가 불가능하고 새로운 자산운용업법 아래에서 투자되는 각종 실물자산(부동산ㆍ골동품 등)의 경우 객관적인 시장가격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은행측의 주장이다. 또 투자자들에게 은행이 미수금을 미리 지급한다고 해도 시장가격이 그보다 높게 나오면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수탁회사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감독원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펀드 운용주체가 아닌 수탁은행들에 미수금을 우선 지급하도록 한 것 자체는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며 “그러한 의견을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수렴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법 시행 초기 난항 예상=
은행권의 반발로 자산운용업법 자체가 시행 초기부터 커다란 난관에 부닥치게 됐다. 정부는 자산운용업법을 통해 간접투자시장을 활성화해 투자상품을 다양화하고 시중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여 자금의 선순환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거창한 속내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자산운용업법이 제정됐음에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투신ㆍ은행권 등 금융업체간 이견으로 새 상품 출시를 위한 표준약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펀드 수탁업무를 거부할 태세를 갖추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새 상품은커녕 업체간 불협화음만 커지는 부작용만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투신권 "수탁 거부는 은행권의 권력남용"지적도=
은행권의 신규수탁 거부 움직임에 대해 투신권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산운용업법 제정 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온 은행들이 ‘미수금’ 문제 하나로 제도 시행 자체를 방해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투신권의 한 관계자는 “시행령이 제정될 때 아무 말이 없었던 은행들이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방해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은행권의 책임 떠넘기기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수탁은행들의 반발이 커지자 오는 6월 자산운용업법을 최종적으로 개정할 때 이 문제를 함께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자산운용회사와 수탁은행들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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