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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매각 부동산·배당금등 객관적 가치평가 곤란

[은행권 "펀드수탁 못하겠다"]<br>상위법 자산운용업법과 하위 시행령 상충<br>은행-투신사간 두고두고 불협화음 가능성

은행권이 펀드 수탁업무를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펀드 미수금까지 은행이 떠안을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투신사가 조성한 간접투자상품(펀드)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도에 해지될 경우 그 펀드가 운용한 주식이나 채권을 시장에서 팔아 그 대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면 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실현되지 않은 수익금은 문제로 남는다. 예를 들어 주식의 배당금 등은 물론이고 골동품이나 예술품 등에 투자했다면 당장 매각되지 않았을 때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가 골칫거리다. 자산운용법 시행령은 펀드를 만든 투신사가 아니라 유가증권을 보관한 은행이 이러한 미실현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단순히 은행권의 반발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시행령의 내용이 모법(母法)인 자산운용업법과 상충된다는 점도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자산운용업법 129조에서는 수탁은행의 고유계정과 신탁계정 사이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반면 시행령 94조에서는 미수금은 수탁은행의 자금(고유계정 자금)으로 우선 충당하고 회수된 미수금을 나중에 갚아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산운용업법 129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을 하위법인 시행령 94조에서는 허용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은행권, "법 개정하지 않으면 수탁 거부한다"=
지난 4일 금융감독당국과 은행 실무자들이 모여 늦은 밤까지 해결책을 논의했지만 마땅한 절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은행들은 “수탁은행의 펀드 미수금 우선 지급은 사실상 대출행위에 해당돼 수탁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미수금의 가장 중요한 항목인 배당금의 경우 미리 예상하기가 불가능하고 새로운 자산운용업법 아래에서 투자되는 각종 실물자산(부동산ㆍ골동품 등)의 경우 객관적인 시장가격을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은행측의 주장이다. 또 투자자들에게 은행이 미수금을 미리 지급한다고 해도 시장가격이 그보다 높게 나오면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수탁회사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감독원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펀드 운용주체가 아닌 수탁은행들에 미수금을 우선 지급하도록 한 것 자체는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며 “그러한 의견을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수렴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법 시행 초기 난항 예상=
은행권의 반발로 자산운용업법 자체가 시행 초기부터 커다란 난관에 부닥치게 됐다. 정부는 자산운용업법을 통해 간접투자시장을 활성화해 투자상품을 다양화하고 시중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여 자금의 선순환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거창한 속내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자산운용업법이 제정됐음에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투신ㆍ은행권 등 금융업체간 이견으로 새 상품 출시를 위한 표준약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펀드 수탁업무를 거부할 태세를 갖추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새 상품은커녕 업체간 불협화음만 커지는 부작용만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투신권 "수탁 거부는 은행권의 권력남용"지적도=
은행권의 신규수탁 거부 움직임에 대해 투신권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산운용업법 제정 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온 은행들이 ‘미수금’ 문제 하나로 제도 시행 자체를 방해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투신권의 한 관계자는 “시행령이 제정될 때 아무 말이 없었던 은행들이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방해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은행권의 책임 떠넘기기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수탁은행들의 반발이 커지자 오는 6월 자산운용업법을 최종적으로 개정할 때 이 문제를 함께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자산운용회사와 수탁은행들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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