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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가속에 정국마저 “무중”/기업들 설비투자 왜 꺼리나
입력1997-02-12 00:00:00
수정
1997.02.12 00:00:00
이세정 기자
◎한전제외땐 실제 7.8% 감소/고용불안·5%이하 성장 우려『도대체 앞이 보여야 투자를 할 것 아닙니까.』
모 대기업 임원은 정치와 경제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우리나라 현실을 지적, 향후 정국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형편이므로 긴급하거나 확실한 투자외에는 당분간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경기침체가 가속되고 한보그룹 부도로 어수선한데다 소위 대권의 향방마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기업들은 움츠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최근 경제상황이 지난 80년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통상산업부가 11일 발표한 2백대기업의 올해 설비투자계획은 최근 경제상황이 일시적인 불경기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투자가 이처럼 급속히 줄어들 경우 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이같은 투자 위축양상은 노동법 파문과 한보부도라는 변수가 겹친 올 1·4분기의 경우 성장률이 5%이하로 급락할 우려가 있음을 시사한다.
2백대기업의 올해 설비투자계획은 지난해 실적보다 2.1% 줄어든 수준. 지난 80년 투자가 19.2% 감소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상 불경기때는 당초 계획보다 실제 투자가 훨씬 적게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투자감소폭은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2백대기업의 실제 투자액은 당초 계획보다 2조1천7백96억원(5.2%) 적었다.
특히 한국전력이 발전소 건설 등을 위해 지난해보다 25%나 늘어난 8조5천7백83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한국전력의 투자계획을 제외할 경우 실제 투자감소율은 무려 7.8%에 이르는 실정이다.
통산부는 지난 94년이후 계속됐던 투자증가세가 지난해를 고비로 일단락되고 조정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에 올해 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투자증가율은 94년 47%, 95년 40.4%, 96년 21% 등 계속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거의 높은 투자증가율때문에 상대적인 위축이라고 보기엔 올해의 투자감소폭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기업은 속성상 불황기에 투자규모를 늘리는게 당연한데 이처럼 급속도로 투자규모를 줄이는 것은 경제외적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줄이면서 해외로는 활발하게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만 봐도 국내 투자위축이 경기대응 차원의 투자사이클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투자위축이 경기침체 기간을 장기화시킬 우려가 높다는 점.
올해 주요 민간기업의 설비투자가 7%이상 줄어들 경우 관련 업체의 연쇄적인 경영난과 고용불안 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업종별 투자계획을 보면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 기계, 제지, 조선업종 등의 투자감소폭이 큰 반면 그나마 투자가 늘어날 부문은 정보통신, 석유화학 등 많은 인력이 필요없는 정보산업, 장치산업쪽이다.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임금, 금리, 지가, 물류비용 등 생산요소비용이 높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내심 이들 고비용구조의 해소보다 더욱 시급한 과제로 안정된 경영여건 조성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상황만 놓고보더라도 노동법파문, 한보사태 등 기업으로서는 예상할 수도 없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를 계획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고비용구조 개선 노력과 함께 당장 기업들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게 절실하다는 지적이다.<이세정>
◎업종별 투자계획/조선 작년의 절반수준/내수위주 고수익업종만 투자의욕 왕성
2백대 기업의 올해 업종별 투자계획은 그동안 국내 산업을 이끌어왔던 주력업종들이 취약한 경쟁력과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업계의 올해 투자계획은 2천5백79억원. 지난해 5천4백28억원의 절반수준이며 95년의 1조3천3백53억원에 비하면 19%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과잉투자로 인해 국내 업체간 출혈경쟁 양상까지 보이다가 갑자기 투자를 줄여 무계획인 「냄비」체질임을 다시 한번 실증한 셈이다.
반도체도 국제 반도체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투자규모를 7.7%나 줄였고 한보철강의 부도이후 철강금속은 25.6%나 감소했다. 6개 제지업체도 지난해 1%의 투자감소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투자규모를 26.6%나 줄인 3천7백억원으로 계획중이고 20개 화섬·방적업체들은 16.6% 감소한 1조5천3백82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다.
17개 기계업체의 경우 지난해(26% 감소)보다 35.5% 늘어난 9천8백85억원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95년(9천8백55억원)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자동차(8.6%)와 석유화학(13.9%)업종만이 지속적인 투자증가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석유화학등을 제외한 대부분 주력업종이 가급적 투자규모를 줄여 일단 침체국면에서 살아남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정보통신, 유통등 수익성이 높은 신업종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투자계획을 대폭 늘리고 있어 대조적이다.
13개 정보통신업체들은 통신사업자 신규진입 등으로 지난해보다 39.1%나 늘어난 3천4백89억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6개 유통업체도 35% 증가한 2천8백79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 수급차질을 빚은 시멘트업종에서도 8개업체가 44.3% 증가한 8천4백6억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시장까지 개방된 수출위주의 주력업종들은 투자를 꺼리는 반면 내수위주의 고수익 업종들은 왕성한 투자의욕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이세정>
◎해외탈출과 대응/기술습득 투자는 전무/정부 임금·금리 등 고비용구조 개선 주력
기업의 해외탈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백대기업들은 올해 전체 투자액의 5.6%에 달하는 2조3천99억원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의 1조1천1백99억원(전체 투자의 2.7%)에 비해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주요 기업들은 올해 해외투자를 지난해보다 늘릴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5개 가전업체들은 지난해보다 85.3% 늘어난 1조3천4백10억원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국내에 2조5천6백46억원을 투자하면서 국내 투자규모의 50% 이상을 해외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가전업체의 해외투자가 국내 투자보다 많아질 날이 머지않은 상황이다.
자동차도 해외투자규모를 지난해보다 1백19.2%나 늘릴 계획이다. 국내 투자규모의 10%에 이르는 3천44억원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철강금속(2천9백32억원 2백13.2% 증가), 기계(1천1백34억원 4백32.4%), 화섬·방적(1천2백47억원 44.5%) 등 대부분 주력업종들도 전체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해외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반도체는 국제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1.7% 줄어든 1백16억원의 해외투자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해외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고임금, 입지부족, 행정규제 등 생산요소비용이 높은 때문이라고 기업들은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하는 이유로는 가격경쟁력 확보(53.3%), 시장확보(46.7%) 등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의 기술습득을 위한 해외투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해외탈출 러시를 막기 위해서는 생산요소비용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상산업부는 이에 따라 임금, 금리, 지가, 물류비용 등 고비용구조를 개선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통산부는 또 기업들의 주된 해외투자 이유로 시장확보가 제시되고 있는데도 국내 유통업체들의 해외진출이 부진한 점을 중시, 효율적 해외진출 전략을 수립할 방침이다.<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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