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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자상] 터널신공법 연구 지반공학 수준 높여
입력1998-10-29 20:17:00
수정
2002.10.22 05:27:51
서울경제신문과 한국과학재단이 제정한「이달의 과학기술자상」제 19회 수상자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지반연구실 수석연구원인 배규진(裵圭振)박사가 선정됐다.
裵박사는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의 국내 정착화 연구는 물론, 격자지보(Lattice Girder)의 국내 건설현장 적용과 지반공학 분야에 퍼지이론(Fuzzy Theory)을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의 연구활동과 연구세계를 소개한다.
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실 수석연구원인 배규진(裵圭振·43)박사의 전공은 터널. 건설교통부 고속철도 심의위원을 비롯해 무려 15개의 각종 직함을 갖고 있다. 그만큼 대외활동이 많다는 얘기다. 동시에 지반공학, 특히 터널에 관한 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 그는 TBM 공법 연구의 선두주자며, 국내 터널공사 현장에 격자지보를 적용한 장본인이다. 또한 지반공학 분야에 처음으로 퍼지이론을 도입한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이력서가 만들어지기까지 裵박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裵박사는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에도 「성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裵박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12년을 개근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왼쪽 무릅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깁스를 한 채 학교에 갔을 정도.
裵박사의 당초 꿈은 카우보이. 고교시절 절친했던 친구가 브라질로 농업이민을 갔다. 그 친구가 보내 오는 장미빗 편지나 말을 타고 넓은 들을 달리는 사진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는 자신도 비행기를 타고 농약을 뿌리는 한국판 카우보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75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농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현지적응 실패 및 인종차별로 고생하는 친구의 현실은 그를 파몽(破夢)으로 이끌었다. 결국 그는 교수로 진로를 바꾼다.
裵박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연세대 대학원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어느 정도 전공을 살리면서 교수가 되는 길은 전과(轉科)밖에 방법이 없다는 판단 때문.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그는 진로 변경 이후 공부에만 매달렸다. 공부에 몰두하다 점심시간을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현실은 카우보이의 꿈을 깬 것처럼 그를 외면했다. 여기저기 대학문을 두드렸지만 대학과 대학원의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지난 84년 건설기술연구원에 입사했고, 여기서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 준 홍성완(洪性完·54)박사를 만나게 된다.
당시 지반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洪박사는 스파르타식 강훈을 통해 裵박사를 단련시킨다. 국내 터널연구분야의 선구자인 洪박사는 많은 연구과제를 주는 것은 물론, 틈나는 대로 자신이 전수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그래서 소화가 됐다 싶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 때의 에피소드 한토막.
裵박사가 결혼휴가를 신청하자 洪박사는 대뜸 『가서 뭐 할 건가』라고 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던 裵박사가 머뭇거리자 700~800매 분량의 논문자료를 주면서 요약·정리해 올 것을 명했다. 그 때문에 그는 신혼여행중 아내의 손도 못잡아 봤단다. 이 얘기는 아직도 건설기술연구원의 전설로 남아 있다. 그의 아내 여수연(余秀娟·40)씨도 종종 『능력없으면 짜르지 한 번 뿐인 신혼여행중에 일하게 하느냐』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裵박사가 아내 余씨를 만난 것도 얘깃거리. 裵박사는 대학원 시절 신촌역 부근의 모 레스토랑에 자주 출입했다. 그러던 어느날 레스토랑 주인으로부터 이화여대 조소과 출신의 余씨를 소개받는다. 형식은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미팅.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이 갔던 친구들이 하필이면 모두 余씨를 裵박사의 파트너로 지목, 두고두고 「짜고 친 고스톱」이란 핀잔을 들어야 했다.
裵박사는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주변의 도움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裵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뼈에 금이 가는 아픔에도 결석을 하지 않는 성실함, 점심을 거른채 공부에 몰두하는 집중력, 그리고 「십장(什長) 연구원」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건설현장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인간적 포용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어 냈다고 평한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현장에 임한다. 인부들과 잠자고 식사한다. 특히 발주처를 동원해 건설현장에서의 편의를 제공받는 일부 연구원들과 달리 「노가다」와 「노가다 기질」을 존중한다.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연구의 세계에서도 적용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정구영 기자】
裵圭振박사가 암석의 강도와 탄성계수를 측정하는 장비인 「일축압축강도 시험기」의 현장적용 시험을 하고 있다. 裵박사는 끊임없는 터널 기계화시공 기술 및 신소재 개발에 나서 국내 지반공학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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