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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의 남성학] 거대 심벌 지철로왕

우리 역사상 최고의 술꾼은 홍윤성이 꼽힌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책사인 한명회를 쫓아 역성혁명의 주역이 된 그는 커다란 항아리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왕인 세조까지도 홍윤성에게는 항아리 채 술을 내렸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큰 성기를 가진 인물은 누구일까. 단연 신라 22대 지철로왕(智哲老王)이다. 그의 성기는 무려 한자 다섯 치, 즉 45㎝였다고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전설에 자신의 허리를 두 바퀴 감고도 남아 귀두를 목에 감고 다닌 사내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전설 속의 허풍(?)인데 비해 지철로왕의 거대 심벌은 엄연히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왕이라면 심지어 그 음경조차 사사로울 수 없는 법. 왕의 것이라면 어떤 은밀한 것도 필경 공적인 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은근히 거대한 심벌을 지녔기 때문에 한 나라의 통치자 감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비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왕의 배우자감이었다. 이렇게 크고 우람한 왕의 성기를 받아 줄 만한 여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왕비를 구하지 못해 후대를 끊을 수는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신하들이 신라 곳곳을 돌며 왕비감을 찾아 다니다가 발견한 것이 커다란 북 크기만한 인분 덩어리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인분 덩어리를 배설한 주인공은 키가 엄청나게 큰 여인이었다. 큰 키에 북만한 인분을 쏟아낼 정도면 옥경(玉鏡)도 클 것이리라. 지철로왕 재위로부터 천년이 지난 지금도 남성들이 심벌의 크기로 자신감을 얻기도 하는 것을 보면 당시 지철로왕이 무엇 때문에 자신의 큰 성기를 대내외에 과시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라시대 왕의 호칭인 이사금의 `금`이 바로 치아(齒牙)이다. 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했을 때 승계 후보자들이 떡에 이빨 자국을 내어 건강한 치아를 가진 자가 다음 왕이 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지철로왕은 큰 심벌을 가졌던 덕분에 무난히 왕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의 심벌은 자신감과 더불어 힘의 상징이다.? 퍼스트비뇨기과원장 drkim@drim2u.co.kr <대전=박희윤 기자 hy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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