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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개혁의 목표/폴 A 새뮤얼슨(송현칼럼)

나는 25년 전 뉴스위크지에 「족장에의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수천만달러의 오일달러를 벌어들인 중동의 대부호가 자산을 현명하게 운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당시 나의 조언은 유익했던 것으로 입증됐고 그 이후 제시했던 제도개혁이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도 과거 같으면 지적 수준이 높은 부자들만 누렸던 짭짤한 수익을 얻게 됐다. 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런 애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과 인접한 일본이 최근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골자로 한, 빅뱅이라고 불리는 금융시장개혁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과잉규제에 젖어 있던 일본 대장성의 관료들은 자신들의 봉건적인 권한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증권사들도 독점적인 이권을 유지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같은 반발은 틀림없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민주주의가 관료주의를 누르게 마련이다. 경쟁은 독점의 기반을 허물어버릴 것이다. 한국의 투자자들은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새로운 자유를 맛볼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여기서 미국 중산층의 현명하고 효과적인 저축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증시에서 최우량주 10개 종목을 선택하는 식의 투자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10개의 종목에서 이쪽저쪽 옮겨다니지도 않는다. 주식을 자주 사고 파는 것은 이익이 별로 없을 뿐더러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증시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기업이 번창할지 파산할지 여부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도박에 빠져든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행운이 따른다는 생각은 망상일 뿐이다. 투자종목을 10개에서 20개, 다시 30개로 늘린다고 해도 포트폴리오상 위험분산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보험회사라면 알고 있듯이 수많은 준독립적인 위험요소를 결합할 때만 투자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학적인 효과이고 분산의 마력이다. 결론은 뮤추얼펀드(투자신탁)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뮤추얼펀드는 노련한 전문가를 통해 수백가지의 다양한 주식이나 채권을 선택한다. 즉 5백∼1천개의 갖가지 주식을 채워넣은 인덱스펀드를 사야 하는 것이다. 퇴직금을 최대한 불릴 수 있는 연금펀드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근검절약하고 정보에 밝은 투자자들은 뮤추얼펀드나 연금펀드에 서비스의 대가를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가. 과거 한국에서는 이같은 수수료가 매우 비쌌다. 매입에는 물론, 운용대가로 매년 일정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것이 불필요할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나는 미국에서 종종 뱅가드 S&P 500 인덱스 뮤추얼펀드를 매입한다. 펀드 가입에는 별도의 비용이 필요없다. 그대신 연간 펀드 운용대가로 0.2%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된다. 이는 영업사원에 의존하는 뮤추얼펀드의 연간 수수료인 2∼3%보다 훨씬 낮은 셈이다. 만일 내가 위험분산을 목적으로 아시아 주식을 사고 싶다면 역시 뱅가드 인터내셔널 인덱스펀드를 매입하면 된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인덱스 채권펀드, 국내 인덱스주식펀드, 국제 인덱스펀드다. 이들 펀드는 내가 부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매우 효율적인 투자수단이다. 한국독자들이 이같은 미국식 투자방법으로부터 어떻게 혜택을 볼 수 있는가. 실제로 한국의 빅뱅 이후엔 내가 이용하는 뱅가드펀드를 우편이나 전화만으로 손쉽게 매입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서울에서 뱅가드나 피델리티펀드를 비롯한 뉴욕과 런던의 유명한 금융서비스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발군의 실력을 보이려고 애쓸 것이다. 한국적인 빅뱅의 최종적인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쟁구조가 얼마나 빠르게 자리잡는지,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적이고 저렴한 투자제도를 탄생시키는지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미 MIT대교수·노벨 경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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