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이 통했다’던 고대 로마 제국도 한 때는 별 볼일 없는 부족국가에 불과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로마가 있는 서방이 아닌 동방 원정에 먼저 나선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로마가 큰 매력이 없는 일개 소국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유럽의 관문’, ‘유럽 금융의 중심지’ 런던 역시 18세기 산업 혁명 이전에는 영국의 변방 도시에 불과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국(大國), 대도시의 시작도 결국엔 변방이었다.
아세안(ASEAN) 지역 국가들은 과거 빈국, 개발도상국 등의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세계 경제의 버팀목, 포스트 브릭스(BRICs) 같은 차세대 신흥시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5개국에 의해 설립된 협력기구 또는 경제 블록으로 올해 회원국이 10개로 확대됐다. 아세안의 인구는 6억4,000만명에 육박하며 국내총생산(GDP)은 2조2,000억 달러로 한국의 두 배 규모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아세안 펀드는 될 성 싶은 ‘변방’에 일찌감치 주목한 상품이다. 2007년 4월 설정된 이 펀드는 3년 만에 누적 수익 100%를 넘겨 설정 후 141.16%의 수익률을 내고 있으며 10일 설정액도 1,000억원을 넘겼다. 삼성자산운용은 이처럼 검증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재형저축펀드로 출시하기도 했다.
펀드를 운용하는 알란 리차드슨 매니저는 16년간 오직 아세안 지역만 파고 든 전문가다.
16년 아세안 통(通)의 능력은 위기 때 빛을 발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나 2011년 태국 홍수와 같은 구조적인 위기의 순간을 적극적인 저가 매수의 기회로 봤다. 2011년 하반기에 발생한 태국 홍수 당시 태국 모든 상장사의 주가가 폭락했다. 태국 주식 가치가 빗물에 휩쓸려가던 그 때, 리차드슨 매니저는 오히려 태국의 비중을 벤치마크(MSCI 동남아 지수) 대비 20% 이상으로 늘렸다. 그는“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단기 이슈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공격적인 비중 확대 전략이 주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결과 지난해 연간 25%라는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리차드슨 매니저는 아세안 주식시장이 향후 5년간은 추세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아세안 경제는 지정학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고 2015년 말에 예정되어 있는 아세안 경제공동체(AEC)의 출범과 함께 인프라 투자가 증가할 전망”이라며 “이런 이유로 인해 현재 5% 수준의 경제성장률에서 1990~1996년 아세안이 경험한 ‘호랑이 경제’기간의 6~7%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삼성 아세안 펀드는 앞으로 소비재 섹터와 원자재 섹터의 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글로벌 경기가 1ㆍ4분기에 안정화되고 2ㆍ4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2분기부터 원자재 시장 역시 호전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리차드슨 매니저는 “최근 미국ㆍ중국을 중심으로 원자재 수요가 늘면서 인도네시아의 탐방티마(Tambang Timah), 발레인도네시아(Vale Indonesia)등 관련 종목을 적극 편입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아세안 펀드는 국가별로 태국과 필리핀의 비중을 줄이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태국과 필리핀 주식시장의 전망은 여전히 밝지만 소비재, 건설 관련 주식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이미 20배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유사섹터의 PER이 10~15배 수준에 불과한데다 이익도 시장의 기대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리차드슨 매니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리차드슨 매니저는 “인도네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아세안에서 가장 높은 6~6.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다음해 중순 대선까지 정부가 확장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 기업이익과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말레이시아 역시 올해 2분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있어 주식시장이 주변국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지만 선거로 인한 오버행(대규모 대기물량)이슈가 해소되면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차드슨 매니저는 앞으로 이 펀드를 통해 복리의 마법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그는“한국 투자자들이 삼성 아세안 펀드를 장기투자 상품으로 여겨주기를 바란다”며 “연간 5%씩 벤치마크를 앞서거나 연간 15%의 수익을 내 5년마다 투자자의 원금을 두 배로 늘려주는 상품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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