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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최지희(22)씨는 요즘 틈 날 때 마다 동대문종합시장 원단상가를 찾는다. 직접 천을 구입해 옷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최씨가 부업으로 의류 제작을 시작한 건 1년 전. 한창 꾸밀 나이인 만큼 신상 의류나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매달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용돈 35만원은 전공 교재 구입비와 식사비로 사용하기에도 빠듯했다. 몸 치장에 지출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최씨는 동대문으로 눈을 돌렸고 직접 옷과 액세서리를 만들어 착용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최씨는 직접 만든 옷과 머리핀, 팔찌 등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게시물을 본 주변 사람들이 구입을 원하면서 이제 최씨에게 동대문 나들이는 일상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됐다. 최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시대라 불릴 정도로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며 "학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게 결코 쉽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힘으로 직접 살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에 대학가 소비 세태도 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대(40.6p)가 전체 평균(19.5p)보다 2배 이상 높을 정도로 대학생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IMF 시절에 처음 등장했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쓴다)'라는 말이 18년이 지나 다시 대학생들의 소비 행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떠올랐을 정도다.
대학생들이 '아껴쓰는' 지출 항목은 첫째 식비다. 이들은 용돈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 시간이면 편의점을 자주 찾는다. 최근 편의점 간편식 종류가 다양해져서 각종 할인 혜택을 추가할 경우 3,000원 미만으로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도시락을 싸서 등교하는 학생들도 캠퍼스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띈다.
공동구매 참여 역시 학생들이 용돈을 아끼는 방법이다. 인터넷 등지에서 공동구매 참여자를 모아 대량으로 구매해 직접 만나 나눠 가지면 구매 단가도 낮출 수 있고 배송비도 절약 가능하다.
배달 음식 비용을 나누거나 생활용품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구매해 나눠쓰는 '나눔족'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김수연(22)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모바일 앱이나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소위 '밥 친구'를 구해 점심 한 끼 비용을 나눠 내기도 한다"며 "어쩌다 한 번 정도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지만 그것마저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밥 친구'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꿔쓰는' 중고 제품 교환도 불황에 빛을 보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모든 참고 서적을 새 것으로 구매하기 힘든 학생들은 대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글을 올리고 일정 기간 각자 필요한 서적을 바꿔 보고 돌려주거나 서로 물품을 맞바꿔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학교가 아예 자체적으로 중고 전공 서적 거래 장터를 만들어 학생들의 주머니 부담을 덜어주는 곳도 있다. 서울여대는 학기 초 단과대별로 중고교재 판매를 실시했다. 정가 대비 30∼70%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어 반응이 뜨거웠다.
주거비 부담에 월세 집을 다른 학생과 공유하는 '집 셰어링'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각 대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룸메이트 구함' 광고가 늘 줄을 잇는다. 5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생들이 조건에 맞는 룸메이트를 구하는 글들로 빼곡하다. 한 공간에서 낯선 이와 함께 사는 게 마냥 편한 일은 아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 부담을 조금이나 덜기 위해서는 월세 방도 누군가와 '다시 쓰는' 불편한 동거도 마다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서울 신림동에서 만난 대학생 유민태(25)씨는 "20대라고 하면 흔히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존재, 과소비 등의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의식주 비용을 한 푼이라도 줄일 묘안을 짜내느라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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