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 기업들은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투자비용이 든다.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의 대표적인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램시마도 지난 2009년 말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2012년 들어 임상시험이 끝나 2012년 7월에야 국내 허가를 받았다. 지금도 미국과 일본 등 국가별로 의약품 허가를 받고 있다. 복제약(바이오시밀러)임에도 불구하고 임상이 들어가기 전 개발 기간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린다. 다른 중소 바이오·제약 기업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소 바이오·제약 업체들은 의약품 개발 이외에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는 다소 이질적인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중소 바이오·제약 기업들의 중단기 주가는 본업 이외에 캐시카우 사업의 실적이나 성장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녹십자(006280)셀(031390)은 항암면역세포치료제사업과 더불어 컴퓨터 관련 부품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 녹십자셀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기술(BT)사업 부문의 매출액은 19억원인 데 비해 종속회사의 실적까지 합친 정보기술(IT)사업 부문의 매출액은 281억원에 달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개발한 BCG매트릭스에 적용해보면 IT사업은 캐시카우 단계, BT사업은 물음표 단계에 있는 것이다. BCG매트릭스는 X축을 상대적 시장점유율로 놓고 Y축을 시장성장률로 해 투자에 비해 수익이 월등한 사업을 '캐시카우',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을 '물음표(Question mark)', 점유율과 성장성이 모두 좋은 사업을 '별(Star)', 점유율과 성장률이 둘 다 낮은 사업을 '개(Dog)' 등 4단계로 한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녹십자셀의 경우 IT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물음표 단계'에 있는 간암 치료제 사업에 투자해 '별 단계'로 성숙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개발에서 임상시험·판매허가 등의 과정을 거쳐 스타 단계로 접어들기까지 대략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업계 특성상 중단기적으로는 IT사업의 성장성을 보면 투자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녹십자셀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회사의 목표는 간암 면역세포 치료제인 이뮨셀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것이지만 치료제 개발 이후에도 임상시험, 판매허가, 국제 논문게재 등의 과정들이 남아 있어 그동안 코스닥 상장 요건을 유지하기 위해 IT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과거 '주호전설'이라는 숙취해소음료를 만들어 건강기능식품 분야에 뛰어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메디포스트(078160) 역시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업과 더불어 바이오 업계에서는 캐시카우 사업으로 사업성을 인정받은 제대혈 보관 사업과 기능성 화장품 사업, 건강기능식품 판매 사업까지 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지난해 영업손실 2억원, 당기순이익은 2012년보다 42.1% 줄어든 11억원을 기록했다는 사업보고서를 낸 3월31일 이후 주가가 15% 넘게 빠졌다. 지난해 실적이 악화한 것은 캐시카우 사업인 제대혈 사업의 성장이 부진한데다 건강기능식품 판매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신재훈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소형 제약사의 경우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사업이 있으면 꾸준한 실적을 낼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의료기기 등 바이오와 연관이 있는 사업 부문에서 실적이 잘 나온다면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때문에 중소형사들은 캐시카우 사업을 하기 위해 다른 사업군의 업체를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동아에스티 등 대형 제약사들의 경우는 약가 인하 등 정책적인 이슈에 민감한데다 의약품 매출비중이 상당히 높아 보조사업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진단이다.
차바이오앤(085660)의 인적분할 사례는 바이오·제약 업체들에 성공적인 모델로 인식될 수 있다. 5월 차바이오앤은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카메라 렌즈 모듈 등 광학사업 부문을 차디오스텍으로 인적분할하고 세포치료제 개발사업과 병원 운영사업을 하는 차바이오텍은 바이오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광학사업 부문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세포치료제 개발에 활용한 뒤 세포치료제 사업과 병원운영 사업만으로도 회사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자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광학사업 부문을 분리해낸 것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차바이오앤이 차바이오텍(세포치료제 사업)과 차디오스텍(광학사업)으로 인적분할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광학사업 부문이 없어도 바이오 사업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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