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실용주의다. 주력 분야와 맞지 않는 사업은 과감하게 쳐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삼성이 한화와 빅딜을 하고 전용기를 매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방식이 그룹에 녹아들면서 계열사의 분위기도 점차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재편과 지배구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합병이 이뤄지고 실적 하락에 따른 대규모 인적쇄신이 예고되면서 삼성 내부가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기침체는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재배치를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1년만 해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 추진 등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구조조정 피로증후군'까지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사업재편이 예상되는 것만도 6∼7개에 이른다. 계열사 곳곳에서는 실적저하와 함께 인적 구조조정이 동반될 수 있다는 '괴담' 수준의 설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의 건강 문제까지 겹쳐 세대 교체설까지 등장하면서 소문은 '광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소문들이 사실로 확인된 곳은 전혀 없다. 한 간부는 "사실확인이 안 되는 것 자체가 너무 불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은 곳은 역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중국의 중저가 스마트폰 공습과 반도체 가격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4분기 6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는 3·4분기에 6조원 초중반의 이익이 예상된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최근 "한국의 반도체는 수요둔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조차 "재경팀에서 각종 경비를 모조리 줄이고 있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임원 경비 등은 올 들어 대폭 삭감된 상태다. 회사 측이 공식 부인하고 있음에도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은 직원들의 '복도 통신' 형태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케미칼 소재 분야와 합친 삼성SDI도 지원부서의 인력 과잉으로 이를 조정해야만 한다. 일부 지원부서는 합병 전보다 인력이 두 배가 됐고 2013년 말 8,500명이었던 임직원 수는 올 6월 말 현재 1만1,163명으로 늘었다. 일부 지원부서는 계열사로 직원을 전출시켰지만 최근에는 보낼 곳이 없어 내부에서는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는 삼성전자의 부품 계열사여서 삼성전자의 매출이 감소하면 같이 사업을 조정해야 하는 처지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3년 228조7,000억원이었지만 지난해는 206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도 실질적인 통합작업이 남아 있다. 네 명의 사장이 있는데다 임원과 지원부서 인력을 줄일 필요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 내부에서는 연말에 리조트와 건설 분야를 먼저 합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다 합치지 못하면 두 분야의 지원 부문이라도 합친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 삼성물산의 사옥을 두고도 여러 지역이 거론되고 있어 직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본사가 바뀌면 사는 곳부터 여러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며 "인력을 줄인다는 말이 많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직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대영 사장은 "삼성중공업과 곧 통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공시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뭐가 맞느냐? (중공업이 있는) 거제도로 가야 하느냐" 같은 얘기도 나온다. 삼성정밀화학도 최근 전지 분야를 삼성SDI에 떼주면서 매각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팔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다. 물론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SDS와 삼성메디슨도 삼성전자와의 합병 얘기가 끊이지 않고 삼성중공업과 일부 금융계열사 역시 희망퇴직을 예전보다 강하게 받고 있다. 금융 부문의 경우 저금리로 한계상황에 몰린데다 이 부회장의 관심이 높은 분야여서 큰 폭의 구조개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이 부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겪는 일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 체제가 굳건해지기 전까지는 이 같은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남아 있고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있을 것"이라며 "관리의 삼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사업재편과 인력조정은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가능하면 삼성이 빨리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내부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룹 전체적으로도 사업을 할 때 힘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지금은 새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인다"면서도 "글로벌 경기침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룹 전체적으로 조직관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최대한 서둘러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