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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함정’ 빠진 농정

농업·농촌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하듯 지난해부터 새정부 농정에 관한 토론회가 여기저기서 개최됐고, 나도 그런 자리에 여러 번 참가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토론에도 불구하고 농정방향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시장개방에 대비해 쌀수매가를 인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는 수매가를 동결했고, 칠레와 합의한 FTA도 농민들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언제 비준될지 불투명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수많은 토론이 불모의 토론으로 끝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논할 수 있는 토대를 갖고 있지 못한데 있으며,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위기는 위기적 상황 그 자체보다도 바로 우리가 위기극복 방안을 논의할 토대를 갖고 있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왜 논의의 토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가? 그것은 우리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농업계는 농정이 시장논리를 무시한 시책을 무리하게 펼쳐 예산을 낭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계가 집단이기주의적 주장을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관철시킨다고 비판한다. 반면 농업계는 비농업계가 농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농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외면하고 시장개방에만 집착하면서 언론 등을 이용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호 불신하는 가운데서는 정책선택에 관한 토론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각기 자기의 주장을 반복하는 경연으로 끝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농업계는 국내외 여건에 대한 냉철한 이해보다는 열정과 힘찬 주장에 압도되고, 비농업계는 냉소적이고 현실 회피적 입장으로 일관할 것이다. 결국 논란은 무성하지만 현재의 정책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은 흐르고 WTO협상과 일련의 FTA협상은 진행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협상은 끝난다. 뜻밖의 결과에 너도나도 당황해 황급히 대책을 수립하지만 낭비와 혼란이란 비용만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뒤덮고 있는 불신과 대립의 늪을 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농정이 제대로 되려면 이 숙제부터 우선 풀어야 할 것 같다. *김영진 농림부 장관의 사퇴로 로터리 필진이 이정환 원장으로 바뀌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필진약력 ▲46년 경기 생 ▲서울대 농과대학 ▲일본 북해도대학 농업경제학 석ㆍ박사 ▲일본 동경대 및 미국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기획조정실장 ▲한국농업경제학회 이사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이정환(농촌경제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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