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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활주로가 없는 컴컴한 산악 지형. 길이 3m, 양 날개 폭 5.2m의 물체가 수직으로 날아오른다. 큰 새로 착각할 정도의 크기지만 날아오르는 물체는 항공기다. 사람이 타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공간에 항공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조종칸마저 없는 무인기다. 무인기는 헬기처럼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프로펠러의 힘으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수직으로 날아오르던 무인기는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자 프로펠러를 전방을 향해 90도로 눕혀 앞으로 비행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자유자재로 비행한다.
대한항공이 개발하고 있는 틸트로터(tilt-rotor)형 무인기 'TR-X6'의 비행 모습이다. 틸트로터는 회전날개를 상황에 따라 수직 또는 수평으로 눕혔다 폈다 할 수 있는 항공기다. 수직 이착륙과 제자리 비행이라는 헬리콥터의 장점과 고속비행과 고고도 비행이라는 프로펠러기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군사적 목적은 물론 해안 및 도서 정찰, 불법어로·산불 감시, 황사·태풍과 같은 기상측정 등 활용방안이 다양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항공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틸트로터 원천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업계와 조선업계가 미래 운송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항공기와 선박의 대형화에 집중해온 항공·조선업계는 정보기술(IT), 기계, 소재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융합된 첨단 운송수단 개발을 통해 미리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이들 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신기술을 통한 위기극복이 절실한 실정이다.
구체적으로 항공업계는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고 자동항법으로 운행되는 무인기와 인공위성 등 우주발사체를, 조선업계는 선박과 항공기가 결합한 위그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운송수단 개발은 산업연관 효과가 크다"며 "이를 통해 미래 항공산업을 주도하고 산업 저변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수업체로 더 잘 알려진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무인기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AI는 국산 공격기 FA-50과 한국형 기동헬기(수리온) 등을 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6일 폐막한 아시아 최대 에어쇼인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근거리 정밀 타격용 자폭형 고속 무인기 '데블킬러'를 내놓았다. 데블킬러는 육상과 해상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자폭형 무인기로 무게가 25㎏ 정도이고 날개를 접을 수 있어 전투병들이 휴대하다가 날려보내 적의 포대를 부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무기다.
무인기 시장은 항공업계의 신시장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항공 컨설팅 업체인 틸그룹코퍼레이션에 따르면 2003~2012년 10년간 무인기는 연간 21.8% 의 성장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전통 헬기시장의 성장은 연간 10.9%에 머물렀다. 틸그룹코퍼레이션은 무인기 시장이 2013년 31억3,300만달러에서 오는 2022년에는 지금의 두 배 이상인 80억7,600만달러로 성장할것으로 전망했다.
항공업계는 무인기 외에 위성 본체와 위성체 핵심부품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KAI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5월 발사 예정인 아리랑 3A호 본체 주관업체로 선정됐다. 아리랑 3A호는 1톤급 저궤도(고도 600~800㎞) 위성으로 광학 관측 카메라와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해 낮에는 눈에 보이는 영상을, 밤에는 적외선 감지 기능을 통한 지열 탐색이 가능하다. KAI는 1월에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의 총조립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은 75톤급 액체엔진에 이를 우주로 날려보낼 시험발사체를 더해 총 300톤급 3단형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무인기·우주발사체 등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항공업계의 신시장 창출 노력은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정부의 지원 속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산업통상자원부는 무인항공기 시스템에 향후 8년간 2,482억원을 투입한다. 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현 정부의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에는 인공위성 수의 대폭 증가는 물론 한국형 발사체의 자력 개발, 달궤도 탐사선, 달 착륙선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조선업계는 '하늘을 나는 배'를 준비하고 있다. 당장 올해 상반기부터는 울릉도를 가기 위해 출렁이는 배 안에서 배멀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신개념 해상 교통수단인 '위그선'이 포항에서 울릉도 취항을 앞두고 있어서다. 위그(WIG)선은 'Wing In Ground effect ship'의 약자로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배'를 뜻한다. 위그선은 날개의 해면효과(날개가 해수면과 가까울 때 날개 밑의 공기가 갇히는 현상)를 이용해 수면에 근접해 비행하는 선박으로 바다 위에서 떠올라 시속 150~200㎞의 초고속 운항이 가능하다.
첫 개발은 옛 소련에서 이뤄졌다. 국내에는 1993년 러시아와의 기술교류를 통해 들어왔다. 기계연구원이 1996년 국내 조선업체와 공동으로 시제품을 개발했고 6년 뒤 한국해양연구원과 벤처업체가 함께 4인승 위그선을 만들어 시운전에 성공했다.
러시아가 개발한 위그선과 달리 국내에서 만든 것은 해수면에서 5m 이상 날 수 있어 파고와 상관없이 비행이 가능하다. 기상이 나빠져 파도가 높아지더라도 한국형 위그선은 이착륙이 가능해 군사작전, 조난어선 구조 등에 쓰일 수 있다.
위그선은 빠르고 수송효율이 높아 앞으로 운송·물류체계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비도 높아 해운업계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료효율을 보면 동급의 선박이나 항공기에 비해 각각 30%, 50% 수준에 불과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위그선을 개발하는 윙쉽테크놀러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세 차례에 걸쳐 70억원을 출자해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윙쉽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50인승 규모의 위그선 개발에 성공했고 200인승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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