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만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일을 너무 많이 벌인 것 아닌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야심 차게 꺼낸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와 금융감독체계 개편, 정책금융체계 개편, 우리금융 민영화 등 4대 태스크포스(TF) 하나하나가 워낙 민감한 이슈인데다 방향에 따라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이 클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물론 자신감은 넘쳤다. 신 위원장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의지를 갖고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의욕 과잉이었을까. 4대 TF의 결과물이나 논의과정은 예상대로 얽힌 이해관계 탓에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화되고 이익집단의 논리에 빠져 제대로 된 결론을 도출하고 이를 밀어붙일 수 있을지 불투명할 정도다.
신 위원장이 "가장 조율이 쉽지 않은 민감한 과제"라고 했던 정책금융기관 재편을 놓고서는 갈수록 부처 간 이견이 커지면서 삐걱거리고 있다. 정책금융 재편의 키를 쥐고 있는 청와대까지 가세하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수출입은행으로 대외금융을 일원화하는 방안은 물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문제가 걸린 대내금융 재편은 논의만 이어질 뿐 결론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알맹이 없는 안이 나올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 역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의 소지다. 하지만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에서 폐기할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다.
박 대통령이 초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수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감독체계개편TF도 가르마 타기가 쉽지 않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떼어 금감원과 동등한 독립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만드는 내용이 뼈대다.
동시에 금감원의 주요 기능인 금융회사 검사와 제재권 가운데 제재권을 일부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금감원의 반발의 강도가 워낙 거세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과물을 내놓은 2개(금융사 지배구조개편안, 우리금융민영화 방안)의 방안에 대한 평가도 높지는 않다. 특히 금융사 지배구조개편안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다. 이사회의 역할을 명문화하고 최고경영자(CEO) 후보 추천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지만 기대했던 '강력한 조치'가 빠진 탓이다. 사외이사ㆍ금융지주사 회장 임기나 연임 제한이나 공익 이사제 도입 등이 빠진 것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알맹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은행과 우리투자증권을 분리해 매각하는 것을 골자로 한 우리금융민영화 방안은 긍정적인 평가는 받고 있다. 하지만 실천력이 문제다. 지방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해당 지역의 상공인단체나 정치권의 반발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의욕은 물론 좋았다. 수술대에는 올려놓았는데 견제가 심해 집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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