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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즘의 명암] 4. 허물어진 자본 통제

/산티아고=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눈덮힌 안데스 산맥을 넘어 나타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뿌연 매연에 싸여 흐릿했다. 분지에 도시가 형성됐기 때문에 공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태평양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 매연을 날려보내기 전에는 이 유럽풍의 아늑한 도시는 늘상 매케한 매연에 휩싸여 있다. 산티아고에 탁한 공기를 고이게 한 안데스 산맥처럼 칠레는 오랫동안 국경에 담을 쌓고 국제자본의 이동을 제한해 왔다. 금융위기에 처한 아시아에서는 칠레의 자본 통제를 배워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이를 도입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이 자본통제를 강화하는 동안에 정작 모델이었던 칠레는 자본통제를 완전히 해제했다. 저리의 외국자본이 유입되지 않아 기업의 금융 부담이 커지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통제는 스스로의 한계로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었다. 「엔카헤(ENCAJE)」라고 불리우는 칠레 자본통제의 골격은 두 가지였다. 첫째, 칠레에 들어오는 외국자본은 1년 동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둘째, 외국인 투자자들은 직접투자 금액의 30%를 이자없이 은행에 예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예치해야 할 금액의 3%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한마디로 장기 자본만 허용하되, 주식시장이나 채권·통화시장에서 단기 이익을 내기 위해 유입되는 핫머니성 자본은 원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칠레의 자본통제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를 막는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 수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구리 생산량이 격감했다. 아시아 수요가 줄어든데다 가격마저 하락했다. 그러자 지난해 6월 칠레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오던 자본 규제를 완화했다.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의 무수익 예치비율을 30%에서 10%로 낮추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칠레 주식과 채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환부족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문턱을 대폭 낮췄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제한이 있는 안데스 산맥을 넘길 꺼려했다. 4개월후인 10월 정부는 그나마 자본통제의 명분으로 남겨두었던 10%의 무수익 예치비율을 완전 해제했다. 단기 자본, 즉 핫머니의 유입을 차단하다간 도도히 흐르는 국제조류에 더이상 홀로 서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중앙은행의 카를로스 마사드 총재는 『자본 통제가 더이상 해결책은 아니다』며 『자본 통제가 국내외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고 자인했다. 한때 사회주의 국가였던 칠레는 73년 아우그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우익 쿠데타로 자본주의로 다시 전환했지만,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정권과 독점자본이 결탁한 국가자본주의를 유지했다. 수입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려 국내 기업을 보호했지만, 경쟁력은 낙후했다. 낙후한 경제시스템으로 82년 칠레는 통화 폭락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피노체트 장군은 「시카고 보이」들을 불렀다. 미 시카고대에서 밀튼 프리드만 교수에게서 배운 경제학자들은 피노체트로부터 시장경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권력에 참여했다. 그들은 대대적인 은행개혁을 단행했다. 부실은행을 폐쇄하고, 은행 대출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대대적인 국영기업 매각을 단행했다. 시카고 보이들의 시장 자유화는 남미를 선도했다. 칠레가 자본 통제를 실시한 것은 91년이었다. 외국자본이 엄청나게 들어와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초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외국 자본이 높은 금리를 노려 칠레 국경을 넘어옴으로써 통화팽창은 가속화됐다. 그때 시카고 보이들이 스승인 프리드만 교수의 반대길에서 방법을 찾아낸 것이 자본통제였다. 금리를 인상시키되 외국자본의 유입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엔카헤 정책을 채택했다. 엔카헤 정책은 몇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외국자본 유입이 제한돼 페소화 과대평가를 저지했다. 따라서 외환 부족시 통화가치가 급락할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둘째 외국자본 유입이 억제됨으로써 국내에 고금리를 유지,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잇고, 셋째 파국적인 금융시장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통제는 문제를 심화시켰다. 해외자본에 대한 과중한 세금 부과는 중소기업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대기업은 해외에서 장기채권을 발행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신용이 부족하므로 단기채를 발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막았고, 중소기업은 고금리에 허덕여야 했다. 또 국내 금리가 높아지는 모순이 발생했다. 외국 차관에 세금을 물리면 당연히 채무에 대한 이자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칠레 카톨릭 대학의 살바도르 발데스 교수는 『자본 통제는 실패작』이라며 『오히려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해쳤다』고 비판했다. 칠레 정부가 자본통제를 허물어 뜨리자, 국제자본이 밀려들고 있다. 올들어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국영기업 매각에 미국 등 해외 기업의 참여가 치열하다. 칠레 자본시장도 핫머니의 공격에서 예외가 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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