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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본 금강산] 암파여! 다시굴러 민족통일을 노래하자

조조(曹操)는 양자강 적벽(赤壁)에서 패전의 쓰라림에 붉게 울었다. 해금강(海金剛) 적벽을 보았으면 부러움에 다시 한번 울었을 것이다. 「원컨대 고려에서 태어나 금강산을 직접 보았으면」(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적벽강(赤壁江)은 해를 가리는 금강산 차일봉(遮日峰)에서 솟아 아침 햇살에 붉게 빛나는 적벽산(赤壁山)을 끼고 돌면서 해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일엽편주(一葉片舟)로 떠도는 선유(船遊)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유람선을 타고 왔는데 해금강의 선유를 맛볼 수 없다. 신선들은 하늘의 배를 타고 금강산을 유람했는데 우리는 해금강에 바다의 배조차 띄울 수 없다. 북한의 군사기지 때문이다. 걸어서 해금강을 도는 것은 바다에 발을 적시고 동해의 깊이를 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금강의 해당화나 해돋이는 보지 못해도 그 짭짜름한 냄새만 맡아도 감지덕지(感之德之)다. 파랗다. 하늘도 바다도 파랗다. 하늘은 거울 같은 바다고 바다는 출렁이는 하늘이다. 하늘은 아찔한 아지랑이를 피우고 바다는 아른한 물그림자를 일렁인다. 하늘은 소리없이 구름을 만들고 바다는 철썩이며 거품을 부순다. 손가락에 찍어 맛본 바다가 달다. 바닷속에 이렇게 많은 색깔이 숨어 있을까. 거무튀튀한 바위의 하얀 거품 자국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이다. 그 아래 분홍·갈색·검정·초록·연두의 이끼와 해초가 물결따라 무지개처럼 일렁인다. 금강산에서 도토리를 줍듯 해금강에서 조개를 줍는다. 고사리를 뜯듯 파래와 청각을 뜯는다. 다람쥐를 놀리듯 방게를 골린다. 불가사리가 꽃처럼 예쁘게 피어 있고 말미잘이 촉수를 나비처럼 하늘거린다. 만물상이 풍상(風霜)의 비경(秘境)을 자랑한다면, 해만물상(海萬物相)은 풍파(風波)의 절경(絶境)을 지키고 있다. 조물주가 만물상을 만들고 남은 바위를 여기 버린 것일까, 바다에서 기어나오던 동물들이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고 그대로 굳어진 것일까. 신라의 사선(四仙)이 사흘을 놀고 간 삼일포(三日浦)는 기슭에 오르면 바다고, 바다로 나서면 호수로 보인다. 동쪽 봉우리를 넘으면 해금강이고 남쪽 봉우리를 넘으면 적벽강이다. 한가운데 와우도(臥牛島)는 한웅큼 다복솔을 이고 몇천 년을 누워 있었을까. 사선정(四仙亭)은 천년 전의 선유(船遊)를 유혹하며 물 위에 떠 있다. 사선의 필적을 담은 단서암(丹書巖)은 물속에 잠겼는데 김정숙(김일성의 처) 동지를 찬양하는 글씨가 바위 벽에 찬란하다. 어둠을 깨뜨린다는 암파(暗破) 바위 앞에 서니 북한 여성안내원의 아리따운 노래가 들린다. 「반갑습니다」에 「도라지타령」이 이어진다. 「암파」는 1944년 벼락과 함께 굴러내리며 광복을 예고했다. 「암파」여, 다시 한번 굴러 통일을 준비하라. 총석정(叢石亭)은 그때까지 서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형처럼 서 있는 북한 군인 대신 늠름한 사선봉(四仙峰)의 열병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총석정을 사진으로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사선(四仙)은 삼일포에서 사흘을 놀았는데 우리는 금강산에서 사흘을 바빴다. 가는 곳마다 사흘씩 머물면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언제 다 돌아볼 수 있을까. 멀리 금강산 자락의 등성이가 어둠 속에 까맣게 돋아오더니 밤이 눈처럼 소복이 쌓인다. 「현대금강」호는 불을 켜고 분주하게 또다른 귀향을 준비하는데 장전항은 불을 끄고 돌아누우며 어둠을 이불처럼 덮는다. 동해항으로 돌아오는 밤에 싸락눈이 어지럽다. 싸락눈은 곧 함박눈으로 커지더니 다시 싸락눈으로 흩날리다가 결국 질척한 비로 바뀐다. 기억은 비를 맞고 현실로 돌아오는 법. 나는 잠시 과거에 갔다온 것일까. 닷새가 50년이 된 것은 아닐까. 사무실의 연필자루는 도끼자루처럼 썩지 않았을까. 동해항에 내리니 하얗게 눈덮인 아침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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