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했다. 학교로 돌아갈 때가 됐다.” 참여정부 경제 정책기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기자들에게 전한 사임의 변이다. 언뜻 선문답 같은 대답이지만 “(부동산 정책 등은) 경제 보좌관실에 이미 넘겼다. 참여정부도 임기 중반에 이르렀고 틀도 잡혔다”는 부연 설명은 이 위원장의 사임 배경을 함축하기 충분하다. 한마디로 ‘할 만큼 했고 이제 할 일도 많지 않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이정우 (사진 위쪽) 위원장의 사임은 이달 초 청와대 비서실 직제개편 때부터 예고됐었다. 김병준 (사진 아래) 정책실장 직제로 정책조정비서관(정태호 전 정무조정비서관)을 신설함으로써 청와대 정책라인의 무게중심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청와대 정책실로 급격히 쏠렸다. 청와대는 직제개편을 통해 대통령 위원회의 인사ㆍ예산ㆍ조직관리 등의 업무가 정책위에서 정책실로 이관했었다. 그동안 12개 국정과제위원회를 총괄하는 정책기획위원회는 장기국정과제 수립 외에도 경제정책입안에 깊숙이 개입, ‘행정부처에 군림한다’ ‘옥상옥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었다. 특히 이 위원장이 주도하던 부동산 대책마저 지난 1월 경제보좌관이 교체되면서 대통령 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로 넘어갔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헌법상의 대통령 자문기구로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사무처장을 겸하고 있다. 이정우 위원장의 퇴진배경은 청와대 참모진의 역할조정에서 1차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중량감을 감안하면 대단히 주목되는 대목이 있다. 우선 그가 참여정부내 대표적인 분배론자라는 측면에서 경제정책기조의 변경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위원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임은 매우 두텁다”면서 “문책성 경질은 아니며 정책 기조의 변경은 더욱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책특보라는 무보수 비상근 직책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따라서 그의 퇴진이 정책기조 변경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평가보다는 청와대내 정책조율의 역학관계 변화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는 김병준 정책실장의 급부상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단순히 김 실장 개인의 역할이 확대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청와대는 정무적으로는 당정분리를 내세우지만 정책에 관한 한 당정일체를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 정책실이 경제ㆍ사회정책ㆍ혁신수석을 휘하로 두면서 직속 정책조정비서관을 통해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국정과제의 기획보다는 기왕의 정책과제의 집행에 더 힘을 쏟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급격한 레임덕 현상이 초래될 것은 불문가지여서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1년간이 참여정부 정책의 성패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더 이상 기획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정책기획위원회는 장기 국정과제 기획 등 대통령 자문역이라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갈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골격인 ‘10ㆍ29대책’의 입안자인 이정우 위원장의 퇴진은 한편으로 강력한 부동산 대책수립의 신호탄이라는 역설적 분석도 가능하다. 10ㆍ29대책이 입법과정에서 뒷걸음질 쳐 결과적으로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기류가 청와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