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레임덕을 막기 위해 기강을 다잡아야 할 경제사정기관인 국세청이 도리어 조직 곳곳에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을 규정에 어긋난 용도로 전용하는가 하면 세금을 더 거둬놓고도 100여명에 이르는 담당자들을 징계 없이 눈감아줬다. 게다가 세수 추계를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해 질타를 받고 국세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터져나오고 있다.
급기야 국회는 국세청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유례가 없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제신문이 30일 국세청에 대해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가 작성한 '2011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 보고서'를 입수한 결과 이 같은 부조리들이 줄줄이 드러났다.
국세청이 보고서를 통해 국회로부터 요청 받은 시정사항은 무려 30건. 주요 지적사항의 유형을 분석해보면 ▦예산 오용 ▦제 식구 감싸기식 인사처벌 ▦주먹구구식 재정 추계 ▦과도한 비밀주의 등으로 분류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자체감사 결과 직원이 위법하게 세금을 더 거둔 사례를 발견하고도 단 한 명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고작 131명에게 경고나 주의조치를 준 것에 그쳤다. 국세청이 책임을 인정한 불복청구사건이 108건이나 됐을 정도로 납세자들이 피해를 봤지만 해당 직원 124명에 대해 책임 추궁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부적절한 예산 사용 사례는 더욱 가관이다. 국세청 운영지원과는 현직 기능직 직원이 일반직 특채시험에 응시하도록 돕기 위해 최근 3년간 교육 수강료로 3억9,610만원이나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의 개인 응시 준비비용을 혈세로 보조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기재위는 "전 중앙행정기관에도 유례가 없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실의 기본 경비 중 일부는 해당 예산이 국제 조세 업무와 무관한 부서 직원의 영어캠프비용으로 쓰여 눈총을 샀다. 정작 역외탈세 등을 잡기 위해 앞으로 확충해야 할 국제조사업무 담당직원들의 교육과정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관련 예산은 엉뚱한 데 쓰인 것이다.
부적절한 성과포상금 집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세청의 성과포상금 지급 분야는 무려 108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일부 포상 요건은 적절하지 않다고 기재위는 평가했다. 더구나 관련 예산 집행이 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용 집행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금은 추상같이 거둬가면서 해당 통계는 꽁꽁 숨기는 국세청의 고질적 비밀주의 관행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국세청은 그동안 온라인 등을 통해 국세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별도의 정부 예산까지 타왔지만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 공개해왔다. 이에 따라 기재위는 심사 보고서에서 "현재 국세통계연보 및 홈페이지를 통해 동시에 공개하는 (조세정보) 항목은 150건이고 홈페이지에서만 공개하는 항목은 154건에 불과하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기재위는 이 밖에도 재정부가 3심 소송 패소율이 90%에 육박하는 1ㆍ2심 연속 패소사건을 우발채무로 계상하지 않았다며 주먹구구식 행정을 질타했다. 기재위는 2010년도 결산심사에서도 납세 협력비용을 크게 잘못 추계해 증여세를 과도하게 예상하는 등 부실행정으로 시정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조세 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 조직이 2만여명에 이르다 보니 여기저기 예기치 못한 실수나 잘못이 나타난다"며 "이에 대해 엄하게 처벌해야겠지만 징세실적을 쌓는 데 몰두 하다 보니 다른 잘못을 관행적으로 눈감고 넘어가는 사례가 있다"고 부조리를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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