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19위에서 25위로 내려앉자 금융당국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WEF 경쟁력 지수가 주관적인 설문조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국가 간 비교가 아닌 해당국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여서 순위가 객관적인 경쟁력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약 2년 뒤인 2015년 8월6일. 청와대는 WEF 수치를 언급하며 금융권을 압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80위권의 금융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금융권을 질타한 것.
청와대와 금융당국 중 어느 쪽 말이 맞을까. 금융계에서는 "한국의 금융과 아프리카 금융을 동급에 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박 대통령이 인용한 WEF 순위 자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WEF의 조사방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WEF의 금융시장 경쟁력 조사 항목은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 △금융서비스 가격 적정성 △은행 건전성 △국내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조달 △증권거래 관련 규제 △대출의 용이성 △법적 권리 지수 등 총 8개 항목이다. 이 중 담보 등에 대한 채권·채무자의 권리를 지수화한 '법적 권리 지수' 외에 나머지는 응답자의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설문조사 내용을 수치화한 것이다. 1~7점 사이에서 고를 수 있는 해당 설문의 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자의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표본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WEF의 한국 내 협력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다양한 업종의 국내 기업 100곳을 선정해 조사를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은행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많은 기업인들이 금융사를 우호적으로 평가했을 리가 없다. 실제 한국의 은행 건전성 지수는 세계 122위로 조사됐는데 국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14%를 기록, 국제권고 기준인 8%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반면 평가 항목 중 유일하게 설문이 아닌 통계치를 활용한 법적권리 지수는 세계 29위로 '대출의 용이성(120위)' '벤처자본이용가능성(107위)' 등 설문을 통한 조사 항목에 비해 순위가 훨씬 높다.
WEF 조사에 참여한 나라마다 설문조사 샘플과 취합 방식이 다른 점도 지적된다. 호주와 벨기에·체코 등 20여개의 국가에서는 해당 설문조사를 100% 온라인으로 진행했으며 미국과 중국 등은 300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나라별로 편차가 크다. 반면 한국의 경우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해당 수치의 낮은 신뢰성은 널뛰기하는 한국의 금융신뢰지수에서도 알 수 있다. 2007년 한국의 금융경쟁력 순위는 27위였으나 2010년에는 83위로 떨어졌다가 2012년에는 다시 7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에는 다시 80위로 내려앉는 등 최근 10년 동안 일정하지 않은 추이를 보이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해외 언론에서도 잘 인용하지 않는데다 금융 관료들까지 부정한 WEF 순위를 청와대에서 언급하며 금융권을 압박하는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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