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종 통계청장
오래 전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기근과 빈곤과 악덕이 발생한다고 했다. 방글라데시가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로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의 인구밀도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배가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형제가 너댓, 많게는 예닐곱 명이나 되었고 삼촌과 고모가 같이 살던 시절이었다.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살아보자’는 산아제한 구호가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 이 구호는 ‘둘도 많다’로 변하게 된다. 1983년은 인구통계적 측면에서 특별한 해였다. 우선 대한민국 인구가 4,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수준인 2.1명 이하로 하락했다. 앞으로 4,000만 명 규모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라는 신호였다. 이후 더욱 낮아져 2005년에는 1.08까지 떨어졌다. 오랫동안 ‘한 자녀 갖기’정책을 펼쳐온 중국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1983년의 신호를 감지하고 대책을 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선배들에 대한 섭섭함이 겹쳐져 가슴이 막막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인구 5,000만 명 시대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아니 5,000만 명이 되면 안 된다고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23일 우리 대한민국의 인구가 통계적으로 5,000만 명을 돌파한다. 1983년 4,000만 명에서 1,000만 명이 증가하는 데 29년이 걸렸다. 주요 원인은 지속적인 기대수명의 증가와 출산율의 소폭 반등(2011년 합계출산율이 그나마 1.24로 올랐다), 그리고 꾸준한 외국인의 유입으로 분석된다. 반갑고 서로 축하할 일임이 분명하다.
5,000만 명 돌파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을 갖춘 소위 ’20-50’클럽에 세계에서 7번째로 가입을 하게 되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우리보다 먼저 이 클럽에 가입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소득이 3만 달러로 상승했다는 전례를 보면 우리도 미래에 대한 힘찬 희망을 그려볼 만하다. 고품질의 열정적인 인적자원, 그 동안 두텁게 형성된 중산층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오히려 그들을 앞설 수도 있다.
그러나 5,000만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면서 문득 또 걱정이 앞선다. 인구 6,000만 명 시대는 도래하지 않을 것 같고, 5,000만 명 시대도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30여 년간은 인구 5,000만 명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2030년 5,216만 명을 정점으로 2045년부터 5,000만 명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2045년부터 2068년까지 23년간 1,000만 명이 더 감소하여 4,000만 명으로 다시 돌아가고 2091년에는 3,000만 명 수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도 큰 문제다. 2010년에 생산가능인구가 총인구의 72.8% 수준인 3,598만 명이었다. 2040년에는 2,887만 명까지 감소하는 등 향후 30년간 700만 명 이상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그리고 치명적으로 국가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이 해법이다.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30년까지는 기대수명이, 이후에는 출산율이 우리의 고령화 속도를 좌우하게 된다. 2060년 인구추계 기준 전망치인 합계출산율 1.42명을 1.79명까지 늘이게 되면 인구는 532만 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속도도 14년을 늦출 수 있다. 미래의 우리 대한민국 후손들에게 ’20-50클럽’을 넘어서 ’30-50클럽’과 ’40-50클럽’에 도달한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경제∙사회∙복지정책의 방향과 강도를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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