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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진의 茶와 건강] <1>21세기 건강을 위해 다시 茶를 이야기하다

차문화협동조합이 주최한 차 시음 현장

중국 윈난성 난눠산 지역에 있는 차 나무

중국 윈난성 시솽반나 지역의 차 나무

△ 차 한 잔 하시죠

“차 한 잔 하시죠!” 전형적인 데이트 멘트입니다. 물론 ‘끽다거(喫茶去)’로 잘 알려진 깊은 선문답의 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할 때는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거고요. 실제 차 한 잔 하면 대개 분위기가 비교적 순조롭게 되죠. 분위기 어색하거나, 속내를 드러내고 싶거나, 긴장된 상황을 풀어갈 때, 차를 마시면 아무래도 편해지게 되죠. 차가 하는 역할이 그렇게 우리 몸을 이완시킨다는 것이죠.

물론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그래도 차와 술은 길이 다릅니다. 술은 마실수록 정신 줄을 놓게 하는 거라면, 차는 마실수록 정신을 차리게 하죠. 술처럼 차도 취할 수는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그림에 취하거나 음악에 취한다고 하니까요. ‘취(醉)한다’는 게 ‘나를 열어놓는’ 개방 상태를 말한다고 하죠.

차도 그처럼 취하기 위해선 내 몸에 적합한 성질의 차를 선택해야겠죠. 차도 제 성질(?)이 있으니 때와 장소에 맞추고 내 몸에 어울리는 차를 선택해 마셔야겠지요. 차의 성질이란 게 어떤 것인지는 다음 주제로 하고요. 물론 술도 적정선을 유지한다면 얼마든 내 몸을 술술 잘 돌려주는 물건이 될 거고요.

차에겐 차의 역할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코드라는 게 있죠. 차의 코드! 조금은 설명이 필요한데요. 결론부터 미리 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몸의 불균형을 맞추어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차와 건강’이라는 스토리는 이렇게 우리 몸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 몸 때문에 하는 차 이야기

우리가 일상에서 늘 먹고 마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밥도 있고, 물도 있고, 공기도 있고, 무수한 내용물들이 우리 몸에 시시각각 들어오고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는데요. 이 무수한 내용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중에 내 몸은 변하는 거겠죠. 들어와서 변하고, 변한 다음 나갈 것은 나가고 남을 것은 남고! 이 과정에서 우리 몸은 생노병사의 흐름을 타게 되죠. 이렇게 우리 몸에 들고 나는 입출운동이 몸을 유지하는 기본 작용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들고나는 내용물은 다양하고 그 종류와 수도 무한합니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복잡합니다. 보고 들으면서 접하는 전자파와 소리도 우리 몸에 들어오는 어떤 것입니다. 눈과 코를 거치지만 내 몸 속 어딘가로 전해지고, 다시 어딘가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입출운동 가운데 중심이라면 단연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물입니다. 고체나 액체 상태로 들어오는 음식물이 몸을 유지하는 기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음식물의 종류도 많고 역시 복잡합니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는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복잡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연 상태의 재료와 그것을 채집하고, 음식 재료로 조리하는 과정, 음식으로 만들어 식사를 할 때 서로 다른 음식들을 다시 먹게 됩니다.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개념처럼 내 몸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과 서로 소통하는 행위입니다. 흙과 내 몸이 둘이 아니고, 다만, 흙을 내 안으로 바로 들일 수 없어서 흙에서 자라는 식물과 이 식물을 먹고 자라는 동물을 우리는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무언가를 내보내고, 그 무언가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넓게 보면 자연 사물들끼리 주고받는 과정의 한 축이고, 그러면서 내 몸을 유지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먹는’ 행위는 중요합니다.

△ 몸에서 시작했던 차 이야기

차라는 물건이 인류에게 등장한 것도 먹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차를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합니다. 오래 됐으니 그만큼의 경험이 축적됐다는 것이고, 미래가 된다는 것은 우리 몸과 관련해 대안이 된다는 것이죠. 이제 그 오래된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차가 우리에게 등장했던 시점은 멀고도 멉니다. 식물학자들은 차나무의 고향을 중국 서남부 지역, 즉 윈난(雲南)이라 말합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차나무는 키가 10미터를 넘는 교목종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4,000여 년 전쯤 북방에서 내려와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음료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푸랑족과 하니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2,000년을 넘는 재배종 차나무가 아직도 있으며, 소수민족의 차 관련 전설 또한 그 세월을 거쳐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지역 소수민족 언어와 보이차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분의 이야기도 직접 전하고자 합니다.

중국 차문화의 시원으로 전하는 문헌상의 기록도 2,000년 좌우간이 됩니다. 차의 시원은 인물로는 신농씨, 서적으로는 ‘신농본초(神農本草)’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는 중국 최초의 약서(藥書)가 있습니다. 신농씨라는 인물이 비록 전설상의 인물로 전해지고,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도 원본은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하는 이야기로 ‘신농본초’가 등장했던 시기는 대략 진한(秦漢)시기 무렵. 기록에 의하면 신농씨는 여러 풀을 먹어보며 그 성질을 밝힙니다. 풀들의 성질을 밝혀 사람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의 정도를 밝혀갔던 것인데요. 그러다가 그는 72가지 종류의 독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중독된 자신의 몸을 푸는데 차를 사용하게 됩니다.

신농씨의 이야기는 차 이야기이기 이전에 동양의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사람 몸에 독이 생기는 원인을 이야기하기 때문인데요. 신농씨는 여러 가지 풀을 먹는 과정에서 독에 걸린 거죠. 바로 ‘섞어 먹는’ 데서 사람 몸에 독이 생긴다는 것인데요. 이것저것을 섞어 먹고, 그것도 성질이 다른 것을 섞어 먹고, 정체가 불분명한 것을 섞어 먹는 데서 사람은 독에 빠진다는 거지요.



신농씨는 그렇게 중독된 상태를 차로써 풀었습니다. 곧 차의 코드는 해독제인 셈입니다. 독을 푸는 물건으로 차가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당시의 차가 지금의 차와 같은 것인지, 먹었다면 어떻게 먹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문헌상으로 차는 인류에게 그렇게 등장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차는 생활필수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 됩니다. ‘개문칠대사(開門七大事)’라고, 중국인들은 살림을 시작할 때 필요한 일곱 가지를 말합니다. 쌀과 장작과 기름과 장과 초와 소금 그리고 차가 그것인데요. 각각 그 나름의 필수 역할을 했던 거죠. 1차 재료와 재료를 요리하는 수단, 재료와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매개하는 재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을 해결하는 물건으로써 차, 그렇게 살림을 운영하는데 필수가 되는 일곱 가지는 제 위치와 역할이 있었습니다.

△ 우리 몸에 들고나는 음식물의 현주소

2,000년이 지난 옛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신농씨의 고민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제기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의 밥상, 아니면 빨리빨리 달려가는 생활 패턴 속에서 주문하는 음식문화를 돌아보면 아득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시대 음식 풍경은 우리를 신농씨가 고민하던 세계로 돌아가게 합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내용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재료의 이름이 옛날과 같아도 그 성질은 달라졌고, 어떻게 섞어먹어야 할지 그 전통도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무거나’가 가장 흔한 먹을거리가 되고 있는 셈이죠.

무엇보다 우리가 자주 보는 음식 재료들의 정체가 달라졌습니다. 채식과 육류 가릴 것 없이 그 종자마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자라는 환경도 너무 변해버렸고, 조리하는 방법과 도구도 달라졌죠. 수많은 재료들은 냉동고와 냉장고를 거쳐 조리대 위로 전달됩니다. 종자에서 시작해 보관과 이동과 조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놓인 음식은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그 밥상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 밥상은 몇 세대를 거치면서 검증된 음식이었는데 말이죠.

‘동의보감’에 기록된 약재들이 비록 이름이 같아도 지금 시기 약재와 그 성질이 같지 않다고 하죠. 약재들도 자라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이름은 같아도 약재 성질이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그럴 경우 처방할 때 이른바 변증이란 방식을 쓴다고 하죠.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른 재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죠.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음식물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만 던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몸에게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몸을 유지하는 음식물과 공기와 물이 변해가고 있다면, 우리 몸도 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몸이 변해가니 우리 생활도 변해가고, 우리 생활이 변해가니 우리 몸도, 그렇게 다시 변해가는 건 아닐까요. 나는 한번쯤 음식물과 깊은 대화(?)를 해볼 필요가 있죠.

△ 다시, 생활문화로 차를 주문하다

21세기 다시 차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도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 속의 필수품으로 차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몸의 입출운동과 관련해 다시 불확실한 시대로 빠졌다는 것! 과거 신농씨가 고민하던 고민을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21세기에 차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내 몸과 나를 둘러싼 사회와 자연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나를 정화시켜 줄 수 있는 매개물로 ‘차’를 이야기합니다.

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그러면서 밥 먹는 일과 같고, 내 몸을 정화시켜주기도 하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켜주는 물건이 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차는 밥이 되기도 하고(茶飯事), 때로는 근원을 생각하게 하고(飮水思源), 때로는 선(禪)과도 한 맛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茶禪一味). 이것이 기초가 돼 차에게는 오래된 과거가 있었으며, 지금은 산업사회에 거대한 규모를 갖춘 산업으로도 커가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아편전쟁이나 미국의 독립전쟁처럼 차로 인한 전쟁도 있었으니까요.

옛날이면 왕과 사대부 등 일부만 마셨을 제한된 기호품이었죠. 지금 시대는 차가 대중의 찻상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내면 내 몸을 왕과 같이 관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밀림처럼 조성된 넓은 차원은 수십 억의 인구가 마실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되고, 무역을 통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곳으로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상황은 그렇게 순순하지 않습니다. 개방된 사회는 향유할 기회를 확대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릅니다. 책임이 보조를 맞추는 사회라야 함께 하는 열린 사회로 나아갈 것인데요. 차라는 물건을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는 지는, 차를 생산 공급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그리고 유통하는 사람들, 이들 삼자의 책임 있는 역할에서 출발합니다.

중국차유통협회가 발표한 2013년 중국 차 산업규모가 대략 5,000억 위안쯤이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차라는 물건은 문화보다는 이윤창출을 향한 산업으로 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차가 지닌 본래의 역할은 해독과 중화 그리고 이완에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물건으로 수 천년 전해지고 있는 ‘오래된 미래’입니다. 차는 사람에게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코너에서는 차를 희망이라는 코드로 풀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차를 매개로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주로 하려고 합니다. 이 안에는 자연과 친해지고 문화와 소통하는 통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차 제작과 유통과 소비라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차 한 잔에 사람에 대한 희망을 담아보고자 할 뿐입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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