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처럼 정리된 대도시에는 온갖 민족과 인종이 뒤섞여 살았다. 과거시험을 보는 신라인과 선진문물을 익히려는 일본인 승려, 비단길을 건너온 소그드(이란)인과 아랍인도 있었다. 당(唐)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의 모습이다. 풍경 그대로 세계적 도시다. 무엇이 장안을 세계의 수도로 만들었을까. 일본 주오대학 세오 다스히코 교수는 세가지를 꼽는다. 첫째 개방적 통치 이데올로기다. 장안을 건설한 수와 당은 선비계통의 왕조여서 포용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두번째는 '우주의 왕도(王都)'라는 기치 아래 건설된 거대계획도시이기 때문이다. 장안의 규모는 동시대에 세계적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 바그바드에 비해 훨씬 크다. 비한족 정권인 수당 왕조는 수도를 우주의 중심으로 건설해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세번째는 도시 내부의 역동성. 유목정권에 의해 건설된 도시의 내부를 채운 것은 왕조 안정 이후 상업활동과 여러 민족간 교류였다. 주목할 대목은 장안의 생성을 설명하며 중국을 내중국과 외중국으로 구분한다는 점. 내중국은 만리장성 내부와 강남지방이며 외중국은 만주와 몽골, 티벳까지 포함한다. 외중국까지 강역으로 삼았던 왕조는 당과 원, 청나라 뿐이다. 모두 정복왕조다. 내중국에 머물던 한족정권이 외중국까지 지배한 사례는 오늘날 중국이 유일하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이 읽혀진다. 역대 정복왕조의 포용과 화합 정책과 달리 한족정권은 국수주의에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서북공정(티벳역사 말살)과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중국 고대도시를 20년 이상 연구해온 전문가답게 저자는 과거의 장안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중국과 맞서야 할 입장에서 문헌탐구와 고증의 깊이가 부럽다. 신간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에는 국제도시의 의미 뿐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과 의례, 사고방식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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