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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ㆍ벤처 “공장 닫아야 하나”
입력2003-04-02 00:00:00
수정
2003.04.02 00:00:00
서정명 기자
실험동물을 생산하는 D사. 이 회사는 지난 2001년 1,500만달러의 대규모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당시만 해도 코스닥시장이 활황세를 보였고 실물경기도 좋아 증권사를 주간사로 해외에서 주식전환형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쉬운 일 이었다. 지난해 인수권자가 원금상환을 요구했고, 보유현금과 2차로 찍어낸 800만달러의 해외BW로 간신히 갚았지만 2차분도 상환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3차 해외BW를 또 발행했지만 600만달러의 채무는 그대로 남아있다. 신용카드 연체자가 현금 돌려막기에 급급 하듯 이 회사는 아슬아슬한 `회사채 돌려막기` 곡예를 하고 있다.
“공장문을 닫으란 말입니까”경기도 안양에서 사출성형품을 생산하는 P사의 K사장은 사업을 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체 직원 21명중 외국인 노동자가 7명으로 33%에 달하는데 내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될 경우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생산성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해 차라리 생산라인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옮기거나 아니면 아예 문을 닫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들이 자금난과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중소벤처 육성책으로 지난 2001년 1조8,000억원의 대규모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를 발행하고 벤처캐피털을 통해 자금수혈에 나섰던 정부가 후속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전 직접지원 방식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부작용을 줄이고 앞으로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선언만 해놓고 손을 놓고 있다. 중소벤처 자금지원의 현주소는 무책(無策)인 것이다.
또 내년부터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줄인다는 방향성만 제시한 채 당장 산업공단과 생산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력공백과 제조공동화를 막을 수 있는 대책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중소기업 현장인식과 대처능력 부족으로 중소벤처기업들이 자금난과 인력난에 시달리며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중되는 자금경색
지난 2001년 5차례에 걸쳐 발행된 1조8,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 만기가 내년 5월과 11월 사이 집중적으로 돌아오면서 중소벤처기업들이 자금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또 벤처열풍으로 99년과 2000년 개별적으로 발행한 전환사채(CB)와 BW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어 상환자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 경기침체로 적자기업과 자본잠식 기업이 속출하고 일부는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 내몰리면서 회사채 상환은 꿈도 못 꾸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캐피털을 통한 수혈도 꽉 막힌 상태. KTB네트워크, 우리기술투자, 무한기술투자 등 내로라 하는 벤처캐피털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 공격적인 투자는 기대할 수 없다. 실제 올해 중소기업청에 신고된 투자조합 결성건수는 한건도 없었으며 외국계 한곳만이 조만간 결성할 것이라는 신고만 한 상태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영업이익을 내거나 추가 펀딩을 받아야지 부채상환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어느것 하나 마땅한 것이 없다”며 “벤처캐피털도 벤처투자는 크게 줄이는 대신 기업구조조정(CRC)과 M&A에 치중하고 있어 중소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은 한층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전 대규모로 발행된 CB와 BW 상환이 몰려 있는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도산과 부도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책 없는 인력난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D사 C사장은 그 동안 일궈온 생산공장을 접을 생각이다. 대기업들의 단가인하 요구가 다반사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익내기도 빠듯한데,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적자를 보면서 회사를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C사장은 “전체 직원 중 30% 가량이 외국인 노동자인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외국인 노동자 일인당 연간 500만원 이상의 추가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생산효율성이 떨어지고 오더가 몰려 있을 때 적기납품을 하지 못하게 돼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금, 사출성형, 폐수처리, 가구 등 노동 집약적이거나 3D업종이 몰려 있는 인천 남동공단과 경기도 시화ㆍ반월공단, 지방공단 업체들은 국내 근로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생산현장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나마 지키고 있는데 고용허가제가 아무런 사후대책 없이 시행될 경우 생산공동화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간접지원 방식의 자금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직접적인 지원책이 부작용을 양산했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으면 우량기업들도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부도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줄이기로 방침을 세웠다면 산업공동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상만 있고 현실대안이 없다면 이는 명백한 실정(失政)이다”중소벤처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서정명기자 vicsj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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