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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 계약제,의미와 함정/박진근 연세대 교수(송현칼럼)
입력1997-06-16 00:00:00
수정
1997.06.16 00:00:00
박진근 기자
정부는 뉴질랜드식 「중앙은행 총재 계약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은행 총재 임명시 한은총재가 달성해야 할 일정한 물가억제 목표치를 계약에 명시하고 이를 달성치 못할 경우 한은총재를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총재 고용제도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중앙은행총재 임명제도의 변경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 운영전략상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에 관한 논의와 결정은 소위 고위급 4자회동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여론의 검증과정을 거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이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뉴질랜드와 호주이며 이들 중에서도 뉴질랜드가 이 제도를 처음으로 창안, 실시한 바 있다.
뉴질랜드의 노동당정부는 1989년에 준비은행(중앙은행)법을 개정하고 중앙은행의 주기능을 생산, 무역 및 고용증진과 물가안정을 위한 금융정책으로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금융정책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종래의 성장과 안정 등이었던 복수목표가 물가안정이라는 단일목표로 압축된 것이다.
이를 시정키 위해 개정된 중앙은행법은 누구를 총재로 임명 또는 재임명하기에 앞서 재무부장관은 그와 총재 재임기간 중 수행될 중앙은행의 통화금융정책 목표에 대해 합의, 계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에 따라 노동당정부의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92년말까지 2% 이내의 일반 물가상승률 목표에 합의한 바 있고 그 후 보수당정부는 그 계약을 93년말까지 연장시킴으로써 제도적으로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같은 뉴질랜드의 새로운 제도는 이웃인 호주로 즉시 파급되어 통화가치 안정, 완전고용 달성, 경제적 번영과 후생증진 등 복수목표를 향하였던 금융정책이 2% 이내의 물가상승률만을 공식목표로 하는 물가안정 정책으로 단순화되었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은행총재계약제는 중앙은행에서 수행하는 금융정책의 목표가 오직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단일목표로 고정됨을 뜻한다. 이에따라 성장, 고용 및 국제수지 등 경제의 여타 기본목표들은 금융정책의 목표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시사된다.
뉴질랜드의 경우 이 제도를 실시하기 이전 5년간 연평균 11%를 능가했던 물가상승률이 제도실시 후 3년간 연평균 5%로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제도실시 이전 연평균 4%였던 실업률은 제도실시 후 8%로 높아졌고 실질성장률은 연평균 2%대로부터 마이너스 1%대로 급락한 바 있다.
또한 같은 기간 중 경상수지적자의 GDP에 대한 비율은 6%로부터 2%대로 크게 낮아졌고 실질금리는 4%로부터 7%로 높아진 바 있다. 물론 호주 또한 이상과 극히 유사한 변화를 경험했다.
결국 매우 낮은 물가상승률만을 명시적인 목표로 한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그 취지에 맞게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하였고 부수적으로 경상수지 또한 개선되었으나 성장률이 크게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졌으며 실질금리 또한 상승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 제도로 인해 물가안정, 적정성장 및 국제수지균형 등 세가지 기본목표들 중 물가와 국제수지를 위해 성장(고용)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같은 정책목표의 우선순위는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볼 때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소망스러운 것일수록 그의 실현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그것이 어디까지나 실업을 대가로 한 것이라는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중앙은행 총재가 수시로 바뀌는 것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통화금융정책에 대한 신뢰성 상실과 그것이 유발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인 것이다.
또한 이 제도의 유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임금의 신축성 증대와 통화공급의 내생성 감소를 위한 자유변동환율제도의 도입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이와같은 요건들이 즉각 충족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현안인 금융개혁과 관련하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병행된 책임강화 방안으로서 이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은 이러한 차원을 넘어 좀더 심도있는 검토와 폭넓은 여론수렴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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