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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지원 치욕을 기회로(사설)
입력1997-11-22 00:00:00
수정
1997.11.22 00:00:00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정책방향을 급선회하고 액수 조건을 협의중이다. IMF구제금융만은 피해가려고 미적미적 해왔지만 막다른 길에 몰린 상황에서 최후의 카드를 던졌다.정책의 실패와 실기를 거듭해오다 자구불능의 국가부도위기에 처했고 끝내는 IMF 「신탁통치」나 다름없는 치욕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IMF밑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게 된 외길에 선 꼴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허세를 부려왔는데 그 분위기가 채 식기도 전에「치욕의 터널」로 들어가게 됐으니 부끄럽고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실책을 자인, 경제팀을 전격 경질하고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불을 끄기에는 함량미달이었다. 외환위기의 원인인 외화부족을 해결할 외화 긴급조달 대책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끝내 경제 신탁통치 시대로
외환시장 혼란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환율이 상한가로 오르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주가가 계속 폭락하고 금리는 폭등했다.
국제금융계의 반응은 시큰둥 했다. 정부의 대책이 대외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앙은행을 통한 협조융자를 우선 추진했으나 미국 일본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들 나라는 되레 IMF의 구제금융을 권고했다. 협조융자는 최소 두달의 시일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버틸 수 있을지 우려를 제기했다. 더 이상 기댈데가 없게 됐다. 위기타개의 최후 카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린 것이다.
○유리한 조건 얻어내야
물론 정부의 오기스런 자존심 지키기는 이해할만 하다. IMF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까다롭다. 법정관리나 다름없어 은행이 기업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금융·재정·산업 등 경제정책 전반에 관해 조건이 걸리고 간섭을 받게 된다. 자율이 속박 당해 경제주권의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다. 60∼70년대로 후퇴를 의미한다.
이제 자력으로 풀어갈 길이 없는 마당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 경제의 기반은 나쁘지 않다. 우리보다 앞서 위기를 겪고 IMF 지원을 받은 멕시코나 동남아국가들보다 경제기초가 나은 게 사실이다.
개방화도 진척되어가고 있다.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강도 높은 계획도 발표, 개혁의지를 밝혔다. IMF도 우리 경제기반이나 개혁 개발 수준을 평가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위기는 미국 일본은 물론 국제위기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안정은 곧 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IMF의 역할은 회원국의 금융안정을 돕는데 있다. 지원조건을 무리하게 요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실책실기 뼈아픈 교훈으로
IMF의 조건을 우리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오히려 금융개혁이나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완급이 문제일 뿐이지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들 문제의 해결을 방치하거나 질질 끌면 대외신인도가 오히려 낮아져 사태가 재연할 우려도 없지 않다. 이 기회에 치열한 고통을 겪고 IMF의 객관적 평가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 대가로 얻는 교훈을 곱씹지 않으면 안된다. 위기는 닥치기 전에 대처해야 하고 실책 실기의 고통이 얼마나 혹심한 지를 깨달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기 3개월을 남겨두고 현 정권은 만회하기 어려운 경제실책을 국민들과 다음 정권에 안겨주게 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국민들도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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