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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 박사팀의 이번 연구업적은 56년이나 묵은 물리학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데서 의미가 그치는 게 아니다. 20세기의 ‘반도체 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값진 ‘MIT 소자’의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 반도체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듯이 MIT 소자의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은 또 다른 21세기의 전자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노벨 물리학상 후보감” 극찬= ETRI 연구의 기원은 지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모트 교수는 “금속 물질에서 전자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힘(쿨롱 에너지)이 매우 커지면 금속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로 변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금속성 물질(도체)을 마음대로 부도체로 바꾸고 다시 금속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는 모트의 이론은 56년간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매혹시켰지만 아무도 실험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김 박사팀은 10여년의 연구 끝에 극소량의 빈 구멍(정공)을 만들어 전자들간 힘의 균형을 일순간에 무너뜨림으로써 모트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세계적 물리학자인 일본의 야스모토 다나카 박사는 “한국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뛰어난 후보를 보유하게 됐다”고 극찬했다. ◇21세기는 ‘MIT 소자’의 시대= 반도체와 MIT 소자는 특정 조건 하에서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와 전기가 통하는 도체 사이를 오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는 전기 저항이 커 발열 문제가 골칫거리고, 흐르는 전류의 양도 MIT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게다가 반도체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전류량도 줄어 일정 크기 이하로 작아지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MIT 소자는 이른바 ‘나노’ 시대를 맞아 반도체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MIT 소자는 자연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나듐산화물(VO₂) 등 100여종의 ‘모트 금속-절연체’ 물질을 활용해 간단한 공정만으로 만들 수 있다. 임주환 ETRI 원장은 “아직 응용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이론적으로는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응용분야 무궁무진= MIT 소자의 응용분야는 무한하다. 김 박사는 “MIT는 물처럼 많고, 싸며, 중요한 소자”라며 “앞으로 20년간 적어도 100조원 이상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MIT 소자를 컴퓨터ㆍ휴대폰 등 전자기기에 적용하면 과부하나 노이즈로 인한 시스템 파괴를 막을 수 있다. 일정수준 이상의 노이즈가 발생하는 순간 부도체였던 MIT 소자가 도체로 변하면서 전자기기로 유입되는 전류를 가로채는 원리다. 온도 감지 능력을 활용해 화재경보기나 미사일 추적장치, 적외선 카메라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도체로 변하는 순간 빛을 발산하는 원리를 이용하면 ‘FED(Field Emission Display)’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이 가능하다. ETRI는 앞으로 1~2년안에 간단한 수준의 응용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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