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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R&D예산 10兆로 늘어난다는데… 신기술부문은 사업비 없어 '허덕'

성과평가보다 대부분 기존사업 위주로 투자<br>국립뇌연구원 설립등 최소비용도 확보 못해<br>"부처간 경쟁넘어 시장기준 검증시스템 필요"



지난달 29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서유현 서울대 의대 교수, 조장희 가천의과학대 교수 등 국내 내로라하는 뇌 전문가들이 모인 이날 공청회에서는 "대체 R&D 10조원이라는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는 과학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내년 착공을 목표로 국내 첫 '국립뇌연구원' 설립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정작 국립뇌연구소 설립을 위해 필요한 내년도 예산 50억원 조차도 심층적인 타당성 조사 등을 이유로 예산편성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었다. 뇌연구원 설립에 관여하고 있는 한 과학계 인사는 "50억원의 예산은 내년 지자체를 상대로 유치 신청을 내는 등 초기 사업화에 필요한 그야말로 최소 비용"이라며 "올 초 정부가 시급하게 과학자들을 불러 기본계획 수립에 도움을 요청해놓고, 이제와서는 연구소설립에 필요한 기초예산 마저 깎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고 성토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내년 사상 처음으로 '10조원' 을 넘어설 정도로 증가추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새로운 기술투자 사업은 최소한의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예산 유동성이 신규 사업보다는 기존 R&D 사업 위주로 투자되면서 사업 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과학계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출범 후 '팽창적' R&D 예산 증가 흐름에 편승, 성과가 미약한 기존 사업들이 적절한 '패널티' 없이 손쉽게 다음해 사업비를 확보하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면밀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물론 참여정부 출범 후 증가하는 R&D 예산에 대해 과학계는 풍부한 연구자금이 확보될 수 있는 만큼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립뇌연구원 사업 사례처럼 신규 R&D 사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높은 진입문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양적 확대가 과학기술정책의 고질적 문제인 '예산 중심적' R&D 투자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예산 증가는 정부 각 부처 사이에서 역으로 '누가 더 많은 R&D 예산을 소진시키느냐'의 경쟁시스템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때문에 힘 없는 부처나 해당 산하기관에는 풍부한 자금이 유입될 여지가 더욱 적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과학기술부가 각 부처별 R&D 사업을 대상으로 최근 발표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R&D사업 성과평가 결과에 따르면 1차 상위평가에서 '적절' 평가를 받은 과기부 등 18개 부ㆍ처ㆍ청 사업은 48개(31.1%)에 불과했지만 2차 상위평가 후 81개(52.6%)로 33개 사업이 더 늘었다. 반면 '부적절' 평가는 1차 60개(39.0%)에서 2차 27개(17.5%)로 똑같이 33개 사업이 줄어 1-2차 평가 과정에서 부적절 사업이 모두 적절 사업으로 상향조정됐다. 특히 이 중 과기ㆍ정통ㆍ해양부 등 이른바 R&D 사업 핵심 부처에서 상향조정된 사업이 각각 6개, 5개, 7개 등 총 18개로 전체(33개)의 54.5%를 차지했다. 부적절에서 적절로 바뀌게 되면 다음년도 예산 배분 시 사업비 증액이 유리해진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부의 한 관계자는 "상향조정된 사업 대부분이 성과평가 항목 가중치 설정 등에서 착오를 일으켜 재수정 후 상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출연연 관계자는 "R&D 중심 부처를 중심으로 평가결과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이 같은 흐름은 성과가 좋지 않은 기존 사업의 예산 증액을 촉진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이는 역으로 유망한 신규 사업의 예산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내년 10조원이 넘는 풍부한 예산이 전제되면서 단지 '기술을 위한 기술개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까다로운 소비자 취향 등의 시장 변화 때문에 혁신적 기술만으로는 상품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미래 핵심기술 확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각종 사업들에 대한 시장 기준의 새로운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 상무는 "R&D 예산의 증가는 '중요 기술'이라는 다양한 논리로 부처간 사업경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반면 관련 기술이 세계적으로 어떤 수준에 위치하고 있는지, 해당 기술이 어느 시장에 쓰일 수 있는지 등을 추적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국가 통계 데이터가 없어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R&D 투자가 오히려 비과학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장 환경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핵심기술을 선정, 이에 대한 R&D를 늘리면 장기적으로 시장의 위험이 높아질수록 투자 효율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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