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세계적인 음료회사인 코카콜라가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 면적 16만㎡에 달하는 거대한 공장을 세웠다. 공장 근처에는 주민들 대다수가 쌀과 코코넛을 재배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플래치마다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공장이 들어서고 5년 뒤, 이 마을의 우물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작물을 재배할 물마저 끊겨 버렸다. 생계가 막막해진 주민들은 코카콜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 법원은 공장 운영과 물 부족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며 코카콜라 손을 들어줬지만, 코카콜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인도 전역으로 코카콜라에 대한 공분이 퍼져나갔고,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학생들도 코카콜라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코카콜라는 그제야 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010년 코카콜라의 연례보고서는 물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물은 당사(코카콜라)의 모든 제품에서 실질적인 주재료이다. 당사는 물의 수급 가능성, 수질, 지속 가능성을 당사가 직면한 핵심적인 도전과제 중 하나로 인식한다."
이제 기업들은 더이상 물을 '물'로 봐서는 안된다. 물은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물은 핵심자원으로서 고갈될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최근에는 투자자들도 이러한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문 자산관리인, 펀드매니저들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물 부족으로 인한 생산 악화, 기업이 지역의 배수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등 물과 기업 경영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다. WSJ은 이와 같은 과정이 금리나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금리 리스크'나 '원자재 리스크' 뿐만 아니라 '물 리스크(Water Risk)'도 투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가령 세계 최대 금융정보사인 미국 다우존스가 산출하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는 기업들의 물 사용을 중요한 평가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삼는다. 다우존스와 함께 이 지수를 공동 개발한 스위스 자산관리회사 로베코샘(Robeco SAM)의 다니엘 와일드 엔지니어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업들이 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며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물을 쓰고 있는지', '물이 부족해졌을 경우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지'등이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펀드평가업체인 모닝스타도 물을 포함한 환경요소를 기반으로 펀드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특히 모닝스타의 이러한 평가는 사회책임투자(SRI)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WSJ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환경 보호와 같은 사회적 가치와 연관시키려 하는 상황에서 모닝스타가 내놓는 펀드환경평가 순위가 투자회사들의 자금 운영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전했다.
물의 가치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환경오염으로 사용 가능한 수자원의 양은 줄어드는 반면 세계 인구 증가로 물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수자원 확보에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환경문제 비영리단체 CDP가 500개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수자원 문제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53%에 달하는 기업들이 물 부족으로 손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향후 5년 안에 물 부족으로 인한 경영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전망한 기업은 무려 65%에 달했다. 물이 기업 경영의 앞날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투자회사들은 미래에 기업들이 직면하게 될 물 부족사태에 일찌감치 대비하고 나섰다. 브라질의 자산관리회사 이타우는 물 부족에 따른 산업 전반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르셀로 시니스칼치 이타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브라질에 닥친 심각한 가뭄 이후 수자원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작하게 됐다"며 "지금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조사를 향후 10년 안에 전 세계의 다른 투자회사들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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