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부동산 경기 악화가 지속되면서 가계의 소비위축이 계층을 막론하고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마트는 17일 자체 개발한 생활물가지수인 '이마트지수'가 지수 산출 이래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476개 상품군의 소비변화를 지수화해 100을 기준으로 소비의 증감을 표현해온 이 지수는 올 2ㆍ4분기에 92를 기록해 지난 2009년 초 금융위기 직후(94.8)보다 더 하락했다. 특히 불황에도 크게 낮아지지 않고 95 이상을 유지해온 식생활지수도 92로 사상 최저를 기록,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먹거리 소비까지 줄이는 등 내수경기 위축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먹거리를 비롯한 생필품 판매가 부진하면서 올 2ㆍ4분기 마이너스 신장세를 기록한 대형마트들은 하반기에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대형마트 빅3 업체의 연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신장률을 보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름 세일 기간을 종전의 두 배로 늘려 역대 최장의 세일전에 돌입한 백화점 업계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백화점 3사의 여름 세일 실적을 중간집계한 결과 각 사별로 지난해에 비해 -3%에서 2%대(기존 점 기준)의 증감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세일 신장률이 9~10% 내외였던데다 올해 할인 물량과 내용이 강화된 점 등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백화점의 세일 실적 중간집계를 보면 소비자들이 구매에 나서더라도 싼 제품만 찾는 소비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전 상품군의 경우 에어컨 등 고가 제품 매출이 7.5% 하락했으며 모피류 매출 역시 13.2% 떨어지는 등 고가 상품군이 실적부진을 주도했다. 반면 10만원 이하 중저가 상품이 다수인 일반스포츠군은 23.8%, 야외활동시 외식비를 줄여주는 간편도시락 상품군은 21.1% 신장하는 등 갈수록 저렴한 상품에 대한 구매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봄 장사가 실종됐던 백화점 의류 본 매장에서는 3만9,000원짜리 여름 원피스가 등장하는 등 전반적인 가격 하향세가 진행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올 상반기 20~30대 여성정장(캐릭터군) 브랜드 중 한섬ㆍ구호 등 고가 브랜드를 제치고 모조에스핀이 1위로 도약해 눈길을 모았다.
특히 의류ㆍ화장품 소비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고가 제품 판매는 줄어들고 중저가 제품 구매 경향이 강해지는 이른바 '립스틱 효과'가 두드러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4~5월 화장품과 의복의 판매액지수(불변가격 기준)는 전년 동월 대비 2개월째 동반 추락했다. 화장품 판매액은 2009년 12월(-0.1%), 2010년 1월(-0.9%) 연속 감소한 후 플러스로 돌아섰다가 4월(-2.6%)과 5월(-0.2%) 다시 감소했으며 의복 판매액지수도 전년 같은 달에 비해 4월(-3.0%)과 5월(-0.8%) 모두 줄어들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산층ㆍ서민층은 식비까지 줄이고 상류층은 수입 고가품 소비를 줄이는 등 모두가 지갑을 닫고 있다"며 "이는 IMF 외환위기 때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어서 장기 불황이 고착화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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