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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융합 인재가 세계를 리드하는 시대입니다. 서울대 나왔다고 다가 아니라 스스로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의성이나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화두가 된 지는 꽤 오래다. 그러나 우리 교육 체계는 전통적인 과목별 칸막이 수업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 견고한 벽을 허물고 수학과 국어, 과학과 음악을 넘나들며 '융합 수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혜련(55ㆍ사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다.
창의적체험학습(일명 창체), 융합인재교육(스팀:STEAM, ScienceㆍTechnologyㆍEngineeringㆍArtㆍMathematics), 스토리텔링형 수학, 융합형 과학 등 요새 교육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키워드는 모두 창의재단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강 이사장이 가장 공들여 추진하는 게 바로 스팀 교육이다.
스팀 교육이란 기존의 과목별 칸막이식 수업에서 벗어나 하나의 수업에서 여러 과목에 대해 공부하는 창의성 중심 교육이다. 예를 들어 '나만의 전자기타 만들기'라는 수업을 한다면 비(比)를 이용해 음계를 찾고 압전 스피커의 원리를 통해 실제로 전자기타를 제작해 연주까지 해보면서 수학ㆍ과학ㆍ기술ㆍ음악을 넘나들며 공부하는 식이다. 미국 이외에 영국ㆍ핀란드ㆍ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을 융합 교육으로 길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스팀 모델학교 16곳에서 시작해 올해 80곳으로 대폭 늘렸다.
스팀 교육 활성화로 계산과 암기 위주의 과학ㆍ수학 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 사교육 시장만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강 이사장은 스팀 사교육 시장 확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들의 부모들은 방정식을 설명할 때에도 '사람 다리는 두 개고 강아지 다리는 네 개인데 사람과 강아지 다리의 합이 48개가 되려면 몇 명의 학생과 몇 마리의 강아지가 있을까?'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질문하면서 수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며 "그 학생들이 만약 학원에만 묶여 있었다면 공식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올림피아드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이사장이 융합 못지않게 강조하는 단어는 소통이다. 그는 인적자원개발 분야의 전문가로서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이사에 이어 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과학계에 부재한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강 이사장은 "이 기관에 온 지 1년 남짓이지만 과학 문화 대중화 사업을 오래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대중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한 경우는 별로 못 봤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과학 전문가들이 전문가라는 틀에 갇혀 일반인들과 소통에는 소홀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과학 문화 대중화에 대한 그의 냉철한 평가다.
강 이사장이 과학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재발견한 계기는 올 초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서 주최한 'Science is not enough'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였다. 과학자는 전문가만 아는 과학에서 벗어나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과학과 소통이 만난 사례로 달의 기원을 밝힌 최신 논문을 한 편 소개했다. 논문의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지구는 달의 유일한 부모'다. 일반 대중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와 자식 관계에 빗대 달의 기원이 지구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강 이사장은 "시카고의 한 대학에 재직 중인 공대 교수가 자신의 전공을 알리기 위해 시카고 지역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험실을 운영하는 사례도 봤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흥미로운 표현으로 설명하고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이공계에 대해 이해하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과학창의재단은 과학 그리고 소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강 이사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성과를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수준의 교육용 자료로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개발을 위한 실무회의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또 "자체적으로 스팀 교육 다음에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창의재단은 이 밖에도 다양한 과학 문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성황리에 막을 내린 과학창의축전은 1997년부터 시작된 역사가 있는 사업이다. 읍ㆍ면ㆍ동 주민센터에서 학교에서는 하기 힘든 과학실험을 해보는 생활과학교실도 10년째가 됐다.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운영되는 일종의 청소년 과학 동아리인 YSC에서 하고 있는 과제도 400~500개에 달한다.
과학창의재단이 실시하는 과학 문화 사업의 특징은 '먼저 찾아간다'는 점이다. 동네나 학교로 찾아가는 생활과학교실이나 YSC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을 찾아가 농사일을 돕는 농활처럼 지역 곳곳으로 찾아가 과학 재능 기부를 하는 일명 '과활'도 4년째 열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이러한 과학 나눔을 지구촌으로 넓혀 글로벌과학나눔원정대를 이끌고 라오스에도 다녀왔다.
강 이사장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중학교에서 태양열 전기 시스템을 만들어줬는데 내년에도 꼭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과학 문화 사업을 하면서 정말 보람찬 순간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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