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규모 국책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성보다 정책적 판단에 따라 추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사업에 대한 경제성과 재원조달 방법 등을 검증함으로써 무분별한 투자를 막기 위해 도입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본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의 정치적 고려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은 378개 사업 중 162개가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됐으나 이 중 절반 정도인 80개가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총 사업비 규모만도 올해 예산(292조8,000억원)의 7%에 달하는 20조원을 웃돈다. 특히 2003년부터 정책적 판단이 도입된 후에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된 사업의 추진규모가 훨씬 더 늘어났다. 1999년부터 2002년간 27개 사업이 추진될 때는 연평균 5.4개(5조원 규모)에 불과했지만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동안에는 53개 사업이 추진됐다. 규모만도 16조원에 달한다. 반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고도 사업추진이 좌절되는 사례도 허다해 예비타당성 조사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은 378개 사업 중 216개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됐음에도 다음해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이 48개(11조원)나 됐다. 이 경우 역시 경제성이 없지만 사업이 추진된 경우처럼 정책적 판단이 도입된 2003년 이후 숫자가 크게 늘었다. 전체 48개 사업 중 67%에 달하는 32개가 추진되지 못했다.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돼도 정부가 정책적 판단을 통해 대규모 재정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이다. 국회 기회재정위원회 소속인 이용섭 민주당 간사는 "지난 10여년간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는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사업을 뒤집은 것"이라면서 "정부가 대규모 재정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경제성 분석보다는 나름의 잣대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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