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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까지만 해도 충무로와 함께 국내 극장가의 메카임을 자부했던 서울 종로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종로3가 서울극장과 함께 과거 종로권의 대표주자였던 피카디리극장과 단성사가 각각 3년여의 공사를 거쳐 재개관한다. 피카디리 극장이 오는 26일 새로 문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 최고(最古) 영화관인 단성사가 내년 1월 다시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이로써 서울 종로3가는 기존 서울극장(11개관 4,600석)과 함께 스크린ㆍ좌석 수와 밀집도 모두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98년 CGV강변 개관으로 시작된 영화관의 멀티플렉스화도 사실상 마무리된 셈이다. 이번에 다시 문을 여는 피카디리극장과 단성사 모두 멀티플렉스 시대에 걸맞게 변신했다.피카디리는 기존 2개관에서 8개 스크린, 1,650석으로 확대돼 종로권에선 서울극장 다음 가는 규모를 갖췄다. 내년 초 재개관하는 단성사 역시 1,100석 단관에서 7개관, 1,300석 좌석을 갖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거듭났다. 두 극장 모두 지하철 1,3,5호선이 만나는 종로3가역에서 직접 연결되는 지하통로를 마련해 관객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다.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급으로 거듭난 종로 극장가가 과연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편으론 산업자본을 등에 업은 멀티플렉스들의 공세가 이들에겐 버겁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종로, 충무로, 명동 등 서울 도심권 극장 관객은 서울 전체 관객 중 약 20% 정도로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 하나가 끌어들인 관객 수와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도심권 10여개 극장을 합쳐야 강남 멀티플렉스 하나와 엇비슷하다. 종로권 극장들이 자랑하는 전통 브랜드 역시 기존 멀티플렉스에 익숙한 젊은 층 관객에겐 ‘낡은 이미지’일 수 있다. 피카디리를 제외하곤 건물 자체가 순수한 극장인 종로권 영화관들은 영화와 함께 즐길 만한 쇼핑 등 위락시설도 부족하다. 또 멀티플렉스 체인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이 국산 영화의 절반 이상을 배급하는 현실에서 콘텐츠의 안정적 공급 역시 종로권 극장들이 따라가긴 어려워 보인다. 결국 종로권 극장들은 기존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최대 무기인 ‘규모’로 승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서울극장과 피카디리, 단성사는 모두 지하철 종로3가역을 기준으로 반경 10m 안에 모여 있어 사실상 26개관 7,550석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멀티플렉스나 마찬가지다. 서로간의 제살깎기식 경쟁만 하지 않는다면 ‘시네마타운’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셈이다. 아울러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권 극장들이 연합해 영화제, 영화거리 조성 등 각종 이벤트를 체계적으로 갖춰 나간다면 향후 새로운 영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갖고 있다.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은 “종로 극장가는 경쟁구도가 아닌 시너지 효과를 노려야 한다”며 “도심권 특성상 이웃 극장 손님보다 다른 지역 손님들을 종로로 불러오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전한다. 피카디리 정만수 이사 역시 “종로 극장들끼리의 경쟁은 의미가 없다”며 “과거 ‘극장하면 종로’라는 인식을 관객들에게 다시 심어주는 게 성패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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