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양대 수급 주체 중 하나인 기관투자가가 올 들어 벌써 10조원 가까이 순매도하며 지수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 상반기 코스피가 유동성 장세를 등에 업고 모처럼 박스권 돌파를 시도하면서 투신권을 중심으로 한 펀드 환매물량이 쏟아져 나온데다 국내 수출업종 부진에 따른 기관의 대형 수출주 매도행진이 이어지면서 매도세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스피 대형주들의 뚜렷한 상승 모멘텀을 찾을 수 없는 만큼 기관의 매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구조적 성장주들을 발굴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기관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9조8,672억원을 순매도하면서 10조원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는 지난해 기관의 전체 순매도 금액 6,936억원과 비교해 무려 15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지난 2012년 4조443억원에서 2013년 5조573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 금액을 키워왔던 기관은 지난해 매도세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는 매도 규모를 더욱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올 들어 기관의 매도세를 키우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투신권에서 쏟아져 나온 펀드 환매물량의 영향이 가장 컸다. 투신은 올해 기관 전체 순매도 금액의 60%가 넘는 6조461억원을 내다 팔며 기관의 매도세를 주도했다. 같은 기간 연기금이 4조7,348억원을 순매수했지만 금융투자(-5조3,245억원)와 보험(-1조3,164억원)도 '팔자' 행진에 가세하면서 기관 전체의 매도 규모를 키웠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4월부터 코스피가 상승 랠리에 진입하면서 수년간 이어진 박스권 장세에서 펀드에 물려 있던 투자자들이 펀드 환매를 통한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기관의 매도세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펀드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도 기관의 매도 확대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활황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펀드의 비중은 줄이는 대신 해외 펀드를 늘리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수출기업들의 계속되는 부진 탓에 기관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대형 수출주를 덜어내고 내수주와 중소형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점도 매도 규모를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이다. 실제 올 들어 기관이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원 가까이 순매도하는 동안 코스닥시장에서는 1조원 넘게 순매수하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올해 기관의 코스피 순매수·순매도 상위 종목을 살펴봐도 현대차(005380)(-1조6,095억원)와 SK하이닉스(000660)(1조248억원) 등 대형 수출주들은 집중적으로 팔아치운 반면 신세계(004170)(4,550억원)와 엔씨소프트(036570)(3,919억원) 등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내수주들은 사들였다.
이 센터장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아무리 저평가된 대형 우량주라도 오랫동안 수익이 나지 않으면 매도 주문을 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주가가 부진한 수출주를 덜어내고 돈이 되는 내수주로 갈아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시전문가들은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는 종목들을 집중 발굴하는 기관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참고하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7월 이후 기관과 외국인의 순매수 상위 종목 20개의 평균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기관이 8.4%의 수익을 낸 반면 외국인은 -1.2%에 머물렀다.
임은혜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 시장 전체를 사들이는 관점에서 대형주 위주로 접근하는 외국인과 달리 기관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구조적 성장이 가능한 종목들을 발굴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며 "기관의 투자패턴을 추종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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