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행시 23회 동기다.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지난 5월까지 대규모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강단 있게 추진해오며 역대 어느 콤비보다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구조조정이라는 공동의 전선이 사라진 탓일까. 최근 두 금융수장의 공조체제는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본래 금융위는 정책, 금감원은 감독ㆍ검사를 총괄하도록 역할이 분담돼 있다. 그러나 요즘 두 기관은 본연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상대방 영역에 대해 걸러내지 않은 비판이 오가는 등 주도권 다툼에 함몰된 모습이다.
◇금융시장 "시어머니가 둘인 며느리 격"=금융 당국의 팽팽한 기 싸움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시장이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둘인 며느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은행의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이다. 프리워크아웃에 대해 김 위원장과 권 원장이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 금융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권 원장이 "프리워크아웃을 활성화하라"고 당부할 때만 해도 은행들은 자체 프리워크아웃에 대한 현황 파악으로 분주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프리워크아웃은 금융 당국이 강요할 일이 아니다"라는 정반대 발언을 내놓자 내심 반가우면서도 대놓고 한 쪽 편을 들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됐다.
저축은행 연계영업도 비슷한 경우다. 솔로몬저축은행 등 5월 구조조정된 대형 저축은행을 금융지주에 매각하기 위해 금융위가 '인센티브' 격으로 연계영업을 전격 허용했으나 이를 두고 금감원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회의론이 짙다. 연계영업의 실효성이나 계열 저축은행과 비계열 저축은행 간 형평성도 문제지만 감독ㆍ검사 책임을 맡는 금감원 입장에서 '생색은 금융위가 내고 뒤치다꺼리는 금감원이 하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다른 상황인식, 상이한 해법=두 기관장은 이에 앞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서도 인식 차를 드러내 금융시장 관계자들을 헷갈리게 했다. 김 위원장이 유럽 재정위기를 놓고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충격"이라고 진단한 것과 달리 권 원장은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금감원이 "세계경제 둔화 장기화에 대비해 경제주체들이 경계심을 갖고 사전이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뒷수습을 했지만 금융 당국이 사전적으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관장의 발언부터 나간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과 권 원장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 해법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권 원장이 가계부채의 전면적인 해결을 위해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금융위는 즉각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권 원장이 '정책'에 대해 발언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김 위원장은 아예 "재정투입은 없다"고 싹을 잘랐다.
지금까지 금융정책에서 사실상 '서자취급'을 받았던 서민금융에 대한 두 기관의 경쟁적인 대결도 결국은 서민금융이라는 본질보다 정치권을 바라본 주도권 싸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민금융상품ㆍ서민금융포털사이트ㆍ서민금융콜센터 등 모두 서민층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목적보다 '주도권'을 누가 쥐냐에 더 사활을 걸고 있다.
◇대선 앞둔 정치권 입김에 '흔들'=두 기관은 대선을 앞두고 항상 긴장 관계였다. 최근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은 두 기관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정권 말 레임덕이 가속화되는데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가 '우리금융 매각을 차기 정권에 넘기라'고 제동을 걸면서 우리금융 매각작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초 매각일정에 따라 오는 27일 마감하는 예비입찰에도 유력후보들의 입찰제안서가 들어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 금융위원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에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금융입법 통과도 현재로서는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금융정책 자체가 우선 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현시점에서는 두 기관 모두 본업인 금융보다 금융감독체제 개편 같은 정치적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정권 말에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들에 집중해 하반기 금융정책을 잡음 없이 마무리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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