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시작부터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9개월간 시련 일변도였던 수장이 있었을까.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달걀 세례를 시작으로 직원들과 첫 대면했다.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이 2주간이나 이어져 온전한 취임식도 갖지 못하고 행내 방송으로 취임사를 갈음했다.
자신의 기치로 '스토리 금융'을 내세운 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를 임직원들에게 설명해왔고 KB★스토리 통장, KB 하이! 스토리 정기예·적금 등 관련 상품들도 선보였지만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횡령 사건에 국민카드 정보 유출,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연루까지 큼지막한 사건들이 터져 빛을 발하지 못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이 행장이 이끌던 국민은행이 국민카드 정보 유출 사건 이래 전사적으로 똘똘 뭉치면서 잃어버린 고객 찾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19일 국민은행은 992개 영업점장이 해당 영업점 거래고객에 직접 전화를 해 소통하는 '영업점장 고객의 소리' 청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현장형CS라 일컫는 이번 행사는 고객만족도 조사를 통해 파악하기 어려운 현장의 목소리를 영업점장이 고객과 직접 소통해 서비스 개선까지 이어지는 활동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번 활동은 이 행장이 실천하고자 한 '스토리 금융'의 한 방편이다.
이 행장은 취임 이래 전국 지점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스토리 금융을 설명하고 건의사항을 청취했다. 그는 은행의 수익성을 올려주는 상품을 고객에게 팔지 말고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상품을 권유하라고 주문한다.
이 행장이 스토리 금융을 설명할 때 항상 드는 예가 '50만원짜리 펀드 판매'다.
수입이 넉넉한 사람이 남는 자산으로 어떤 부문에 투자를 해 수익성을 창출할지 고민할 때 은행이 이 고객에게 50만원짜리 공격적인 펀드를 권유하는 것과 1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같은 액수의 펀드를 판매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는 전자가 되지 후자가 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은행과 고객이 함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애플처럼 아이팟 같은 대표적인 혁신 상품이 필요하다는 내부 직원의 건의에 이 행장은 국민은행의 대표상품은 직원들이라고 말하면서 고객에게 기본과 신뢰를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면서 "이번 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고객들을 알아가는 스토리 금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