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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중견기업 육성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히든챔피언' 중견기업 300개를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뒤인 지난 24일 중소기업청은 2017년까지 히든챔피언 후보군 1,000개를 육성하겠다는 2014년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불과 4년도 안 돼 정부의 목표치가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낙관적인 정책목표의 근거는 찾기 힘들다. 특히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업무보고에서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히든챔피언은 23개로 1,307개인 독일 등과 비교할 때 크게 부족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중기청이 3년 만에 50배 가까이 소위 히든챔피언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중기청은 1,000개로 선정한 근거는 현재 431개라고 밝힌 후보군을 2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를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글로벌 강소기업은 285개에서 500개로, 월드클래스 300은 100개에서 300개로, 글로벌 전문기업은 46개에서 200개로 확대하겠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중기청은 현재 후보군을 집계하는 과정부터 통계 오류를 범했다.
총 431개에는 월드클래스 300과 글로벌 전문기업에 중복돼 있는 17개 기업이 두 번 포함된 것. 세밀하지 못한 업무계획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더해 한심한 것은 1,000개를 키우겠다면서 히든챔피언의 정의조차 없다는 점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아직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면서 "7월에 발표할 예정인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방안에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정부 각 부처와 은행, 기관들이 글로벌 우량기업을 키우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명쾌한 정의도 없이 검증도 안 된 '히든챔피언'이라는 용어를 금과옥조처럼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한 청장이 발표한 23개라는 수치는 '히든챔피언'의 창시자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교수가 말한 내용이다. 지몬 교수는 '매출은 크지 않지만 시장점유율은 세계 3위 이내이거나 소속 대륙 내 1위를 달리는 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차용한 중기청은 해당 기업 리스트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주요 기관과 은행들도 각자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한 기업이 4~5곳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니까 너도나도 글로벌기업을 지원, 육성하겠다면서 천편일률적인 숫자놀음을 답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히든챔피언(60여개), 수출입은행은 히든챔피언(200여개), KOTRA는 월드챔프사업, 기업은행은 수출강소기업 +PLUS 500, 산업은행은 KDB글로벌스타 등을 운영하는 식이다. 이들의 지원내용은 연구개발(R&D), 해외 마케팅, 금융지원 등 대부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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