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신한의 안정을 택했다. 4명의 유력 후보 가운데 '신한사태'의 여진에서 가장 자유롭고 내부적으로 신망이 높은 조용병(사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신한은행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한 회장은 이를 통해 라응찬 전 회장의 그림자를 벗고 완벽한 '한동우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재일교포 지지세가 약했던 조 행장의 선임을 강행한 것은 신한 내에서 한 회장의 입지가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 신임 행장은 스스로를 '조용한 용병'이라 낮추는 소탈한 성품을 갖췄으면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행장으로 선임되기 직전 기자와 장시간 만났던 조 행장은 "인사부 기획부 뉴욕지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령이 나는 대로 일한 신한의 (조)용병"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마라톤을 뛸 정도로 강한 체력을 갖췄고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형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1등 자리를 유지해온 신한은행은 조 행장 선임으로 글로벌과 자산운용 분야에서 보다 강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조 행장은 지난 2007년 뉴욕지점장으로 부임해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겪으며 자금조달 업무 등을 진두지휘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임원으로 전격 승진했다. 그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기업들은 대출을 갚지 않고 은행의 자금조달 길은 막혔던 위태로운 상황에서 은행이 어떤 식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짜야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행장은 뉴욕지점장 이후 신한의 글로벌 사업 관련 임원을 맡았고 이 시기에 신한의 글로벌 사업부를 재편하며 신한 글로벌 경쟁력의 토대를 만들었다. 한 회장이 조 행장을 선임한 것도 이 같은 글로벌 전문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저금리 기조에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신한의 성장은 결국 해외에서 답을 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산운용 부문 강화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조 행장은 "은행 예금 금리가 바닥인 상황에서 앞으로는 자산운용이 대세일 수밖에 없다"며 신한의 자산운용 분야를 대폭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신한 내부 관계자는 "조 행장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거쳤기 때문에 단순한 뱅커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산운용 분야에서도 차별화된 시도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은행의 전통적인 영업 분야에서도 추진력이 대단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단적인 사례로 경찰의 '참수리카드'를 들 수 있다. 조 행장은 2012년 영업추진그룹 담당 부행장 시절 경찰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복지카드를 따낸 바 있다. 기관영업의 전통 강자인 우리은행을 제친 결과였다. 당시 카드 발급에 따른 계좌유치는 말할 것도 없고 부가적으로 수천억원의 대출이 일어나는 등 리테일 부문의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신한은행의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주목되는 또 다른 부분은 신한의 차기 후계구도다.
신한그룹 내 소규모 계열사(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이었던 조 행장은 신한은행장으로 발탁되면서 강력한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한 회장이 병석에 있는 서진원 전 행장을 건강 회복 이후 여전히 중용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조 행장이 '현직 은행장'으로서 프리미엄을 쥐게 되는 만큼 앞으로 차기 회장을 놓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행장 선임 과정에서 한 회장의 입지가 강화되고 상대적으로 재일교포들의 입김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신한 차기 후계구도 판세에서 주목해볼 부분이다. 조 행장은 오사카·동경 지점 등을 거친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일본 지점 근무 경력이 없어 신한의 최대 계파인 재일교포의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으나 이것이 행장 선임 과정에서 장애가 되지 않았다. 한 회장은 조 행장과 함께 서 전 행장,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등 많은 잠룡들을 경쟁시킴으로써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고 임기 만료(2017년 3월)까지 신한의 안정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