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외환위기로 전 국민의 소비가 급감했던 1999년 7월(0.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4개월 연속 0%대 물가 상승률이며 담뱃값 인상분(0.58%포인트)를 제외하면 -0.2%다. 김재훈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농산물, 석유류, 도시가스 가격의 하향 안정세 등 공급 측 하방 요인이 작용해 물가 상승률이 0.4%에 머물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도 약해졌다.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지수는 2.1% 오르는 데 그쳤다. 전월보다 0.2%포인트 내렸다. 이는 한국은행이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측정하는 주요 척도로 삼는 지표다.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까지는 물가 상승률이 계속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물가 상승률이 점점 0%에 가까워지고 있고 유가 하락이 시차를 두고 상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상반기 중 담뱃값 인상분을 포함한 수치도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늦어도 오는 9월부터는 지난해의 기저효과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가 상승률이 급락한 게 지난해 하반기부터이므로 올 하반기에는 수치가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가 상승률 둔화국면이 계속되면서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단 국민 경제에는 호재가 된다. 가뜩이나 소득 증가율이 정체되며 살림살이가 빡빡해진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돼 소비 여력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2009년 일본은행(BOJ)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디플레이션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4%가 '긍정적'이라고 답했지만 '부정적'이라는 응답자는 20.7%에 불과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물가 상승률 둔화가 국가 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칠지 몰라도 국민 개개인에게는 긍정적이라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가 재정에는 직격탄을 날린다. 정부는 다음 해 예산을 전년도에 미리 짜야 하는데 중요한 기초자료로 경상 성장률을 활용한다. 경상 성장률은 실질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GDP디플레이터)를 합쳐 구하며 우리 경제가 내년에 어느 정도 팽창할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 둔화는 세수를 줄이고 이는 재정적자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경상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세수는 2조~3조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물건 가격이 떨어지면 부가가치 세수가 줄어들고 기업 매출도 줄어들면서 법인세도 감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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