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사용자협의회는 최근 은행권의 임금 인상률을 2.8%로 합의했다. 당초 노조가 8.1%를 들고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크게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고액 연봉에 올 들어 은행권 순익이 반 토막 났음에도 임금 인상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낙후된 데는 고비용 구조가 한몫한다. 오로지 높은 급여 탓에 금융권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인건비가 경영에 작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단순 업무인 은행에 인재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은 금융권의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여성 복리후생비 더 하면 1억원 훌쩍=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외환ㆍ기업 등 국내 6대 은행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7,000만원대 안팎이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는 게 업계 정설이다. 비정규직이 많은 여직원들이 포함된 것이어서 정규직 은행원의 급여 수준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비정규직이 적은 남자 직원만으로 비교하는데 이 경우 외환은행은 지난해 남직원 평균 급여가 무려 1억2,200만원에 달한다. 하나(1억400만원)와 국민(1억원)도 1억원을 넘었다. 신한은 9,500만원이었고 우리는 9,100만원이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8,500만원이다. 고액 연봉이 논란이 되자 주요 은행들은 공시 때 일부 수당과 급여성 복리후생비는 제외하고 있어 실제로 받는 급여는 훨씬 크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원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업무에 비해 과도하게 임금을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영업점 업무는 고졸 사원이 대부분 맡아서 해왔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있었던 은행권 구조조정 덕택에 은행권이 임금을 대폭 올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98년 경기ㆍ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되고 보람ㆍ서울은행 등이 합병으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은행들은 2000년대 초ㆍ중반을 거치면서 많은 수익을 냈고 이 과정에서 임금이 대폭 올랐다.
게다가 최근 은행들은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다. 저금리ㆍ저성장 시대를 맞아 수익이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은행들의 올 2ㆍ4분기 기준 누적 순이익은 2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5조4,000억원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2005년 1.27%까지 갔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6월 말 기준으로 0.24%에 불과하고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3.09%에 그쳤다. 2005년 ROE는 무려 18.42%에 달했다. 직원 1인당 생산성도 은행별로 전년 대비 50% 안팎씩 줄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액 연봉은 줄어들지 않은 채 계속 고공행진을 하면서 금융사의 뒷발을 잡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히 은행원들의 급여를 깎기보다는 직군을 다양화하고 그에 맞는 급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 “일반 상업은행의 임금, 특히 하위직의 임금이 우리나라처럼 높은 경우는 외국에도 많이 없다”며 “은행의 임금 구조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력구조 재편 시급=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중 입출금 및 자금 이체 거래 기준으로 인터넷이나 텔레뱅킹ㆍ자동화기기(ATM) 같은 비대면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88.4%에 달한다. 창구거래는 11.6%밖에 안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뱅킹 이용자도 크게 늘고 있는데 6월 말 현재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 수는 3,131만명에 이른다.
이는 빠른 시일 안에 은행권의 점포 전략과 인력 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고용 문제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직군 선발이 필수라는 것이다. 실제 어윤대 전 회장 취임 직후 3,0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KB금융지주는 총영업이익경비율(CIR)이 30%대까지 떨어졌었지만 이후 계속 상승해 6월 말 현재 54.6%에 달한다. 다른 은행권도 비대면거래 증가와 수익 감소에 따른 인력 구조 재편이 화두지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은행 창구 업무는 고졸 사원이면 충분할 정도지만 고학력 직원을 쓰다 보니 경영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대대적인 인력 구조 개편이 필요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일반 직원에 대해 좋은 대우를 해주면서 금융권 안에서도 인력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ㆍ계리사 같은 전문직을 뺀 직원들만 놓고 보면 은행권에만 인재들이 몰린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감독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를 생각하면 보험에 우수 재원들이 많이 가야 하고 그 다음에 증권, 은행 순이 돼야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됐다”며 “은행은 투자은행(IB)이나 재무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하면 고학력 직원이 갈 필요도, 높은 급여를 줄 이유도 적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