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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컴맹」이 털어놓는 직장 현장업무의 비애
입력1997-06-17 00:00:00
수정
1997.06.17 00:00:00
이균성 기자
◎후배들은 인터넷통해 수출 정보교환 하는데 인간관계만 오직 의지/새거래선뚫기 한계에 답답함과 식은땀만…H 무역회사의 K부장(38). 직업이 직업인 만큼 외국어를 잘한다. 영어에 통달했고 불어와 독어도 웬만큼 한다. 성격도 좋아 사람들을 잘 사귄다. 언제든지 외국 바이어를 만나기만 하면 설득할 자신이 있다. 실제로 입사 이후 굵직한 거래를 잇달아 성사시키며 사내에서 총망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고속승진도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요즘 시름에 젖어있다. 「최신식 병기」로 무장한 후배들이 그의 입지를 자꾸만 좁혀오고 있기 때문이다. 「재래식 무기」를 가진 그로서는 「여기가 한계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K부장은 직속후배인 C과장(32)만 보면 기가 죽는다. 그에게 C과장은 마치 「정보공장」처럼 보인다. 상품과 해외 바이어에 관한 한 그의 정보는 정통하고 폭넓다. 특히 새로운 제품을 찾아내고 신규시장을 창출하는 데 그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게다가 이 정보들을 적절히 활용,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면대면 인간관계로 쌓은 제한된 정보만 가진 K부장으로서는 신통하기만 할 뿐이다.
C과장이 가지고 있는 「정보공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이다. 처음엔 C과장이 일없이 PC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역회사 직원으로서 비활동적인 태도가 답답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C과장의 실적이 자신을 앞지른 것이다. 최근 실적은 두배나 차이난다. 급속히 바뀌고 있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에 무심했던 게 이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C과장이 앉은 자리에서 수십개국을 돌아다니며 바이어를 찾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동안 K부장은 수년전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 미국 바이어에게 또 다른 수출선을 찾아달라고 국제전화로 부탁하고 있었으니 그 결과는 뻔할 수 밖에 없다.
K부장에겐 또다른 답답증이 생겼다. 처음엔 C과장의 정적인 모습(사실은 가장 활동적인 모습)이 답답했으나 이제는 C과장을 보면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실감나지만 대책이 없다. 드넓은 바다(인터넷)를 서핑(정보찾기)하는 일은 물을 두려워하는(지독한 기계치인) 그로선 너무 요원한 일이다.
C과장의 책상 옆을 기웃거리고 그의 PC를 흘깃대며 「새벽 잠을 줄여서라도 인터넷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곱씹는 K부장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얼굴이 붉어진다.<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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