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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여성, 처음으로 참정권 갖는다
입력2004-03-12 00:00:00
수정
2004.03.12 00:00:00
황유석 기자
중동국가의 수장격이자 강력한 신정일치 정치체제를 유지해왔던 사우디 아라비아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키로 해 그 파장이 주목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1964년 이후 40년만에 실시되는 10월 말의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은 최근 “여성도 투표할 기회를 갖도록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내용의 공식문서를 발표했다. 사우디 정부는 그러나 이 사실이 일찍 알려질 경우 보수파의 반발이 격렬해질 것을 우려해 내부적으로 선거 직전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 자문위원회의 한 위원은 “정부는 반대파들이 조직적인 대응을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적당한 시기에 조용히` 선거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선거법은 `21세를 넘으면 누구나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남성이 지배하는 두터운 사회체제의 벽에 막혀 여성은 일절 정치참여가 봉쇄돼 왔다.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는 게 보수파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사우디 여성이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운전할 수 없으며, 여행을 할 때는 집안의 남성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엄격히 규정된 복장을 갖추지 않으면 바깥 출입을 할 수 없다. 구급차 요원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이 여성환자의 병원 후송을 거부한 바람에 치료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사우디가 이 같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9ㆍ11 테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 소유자였고,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출신이란 점 때문에 당시 사우디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개혁요구에 시달렸다. 미국은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의 엄격한 이슬람 통치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대 테러전쟁이 실효을 거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민간기업의 10%가 여성이 주인일 정도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불만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불거지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우디 왕실은 120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여기에 의회의 권한을 부여하면서 개혁조치를 추진해 나가도록 했다. 지방선거 실시와 여성 투표권 보장은 자문위의 첫번째 개혁작품인 셈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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