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현지시간) 고용허가제(E-9)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이 치러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에사웅굴대학교. 한국에서 근로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응시자들이 벨 소리와 함께 진지하게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올해 딱 한번인 시험 결과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좌우되는 까닭에서인지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듯하다. 한 교실에 40명씩 들어가는 12개 시험장마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한국에서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의 영향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시험에서 떨어져 1년 반째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안드레아스(24)씨는 "메르스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두려움이 없다"면서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는 기회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8개월째 한국어 공부를 했다는 하난(25)씨는 "대만에서 3년간 자동차 정비 일을 했다"면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좋은 대우를 해 주고 기술을 배우기에도 좋아 많이 선호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70분짜리 시험을 보기 위해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려 온 응시생도 있다. 수마트라섬에서 1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전날 도착해 시험을 치렀다는 나나(23)씨는 "대학에 진학했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졸업을 못했는데 남편이 일하고 있는 한국에서 경험을 쌓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힘들 뿐더러 일반적인 월급이 20만~30만원에 불과하다. 최대 4년10개월 동안 안정된 곳에서 4~5배의 돈을 벌 수 있어 한국에 오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부정시험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응시자들은 입장할 때 지문인식기를 통해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고 금속탐지기로 휴대폰 소지 여부를 점검받은 뒤 사진 대조작업까지 이뤄진다. 본인 확인은 여권만 가능하다. 장병현 한국산업인력공단 인도네시아 EPS센터장은 "시험문항도 비공개일 뿐 아니라 유형도 네 가지로 해 철저하게 문제 발생을 차단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7일과 28일 양일간 자카르타·반둥·솔로·수라바야 등 4곳에서 치러진 인도네시아 한국어능력시험에는 2만8,556명의 응시자 중 971명만이 불참해 응시율이 96.6%에 달했다. 200점 만점(읽기·듣기)에 80점 이상 취득자 중 고득점자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이번 시험에서는 5,800명이 합격해 외국인력 풀에 포함될 수 있다. 한국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 인력은 현재 27만명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해 7,355명을 포함해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6만1,909명이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15개 인력송출국 중 네팔·캄보디아와 함께 가장 많은 인력을 보내는 나라다.
정부는 앞으로 한국어능력시험과 함께 기능수준과 직무능력을 종합평가해 인력을 뽑을 수 있도록 선발체계를 포인트제로 개편할 방침이다. 사업주가 외국인 채용시 고려하는 근무경력, 신체적 조건 등을 반영함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