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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 김중수 한은 총재와 마주앉은 기자들의 관심은 기준금리 향방이 아니라 '경기회복'과 '미국'이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거대한 방향 전환을 앞두고 금리는 한은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 경제가 안전하게 상승 흐름을 탔는지, 오는 17~18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다시 태풍처럼 한국 경제를 휩쓸지 않을지에 질문이 집중됐다.
김 총재는 성장률부터 수출ㆍ환율ㆍ금리ㆍ유가 등 전분야를 망라하며 '한은 총재의 경기 인식이 낙관적'이라는 지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2ㆍ4분기 성장률 잠정치가 속보치와 같은 1.1%로 나왔는데 (속보치보다) 조금 더 견실한 1.1%였다"고 포문을 열었다. 지난 5일 발표된 2ㆍ4분기 경제성장률 잠정치는 9분기 만에 0%대 성장을 벗어난 것으로 저성장 탈출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우리 경제가 겉에서 보는 것보다 안정적인 성장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10월10일 경제전망 수정치를 내놓는다.
◇중국 성장둔화, 유가 예상범위 안=수출은 우리나라 성장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1~7월 경상흑자폭은 36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99억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김 총재는 "우리 성장은 수출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수출 여건이 과거보다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경제권을 세 갈래로 구분했다. "영국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은 아직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프랑스ㆍ일본은 위기 이전 수준이고 미국ㆍ독일은 위기 전보다 국내총생산(GDP)이 3~5%나 더 높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우려도 과장됐다고 봤다. 김 총재는 "중국 성장 약화에 대한 의견이 있는데 예상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설비투자가 최근 6~7월에 늘었다 줄었다 변동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예상했던 범위"라고 덧붙였다.
시리아 갈등으로 불거진 유가에 대해서는 국제에너지기구 유가전망을 인용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월 10억달러씩 축소돼 30% 상승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인 월 평균 20억달러에 그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 총재는 "국제에너지기구 유가전망에 따르면 올해 브렌트유는 108달러로 현 시세보다 크게 안 올라간다"며 "당초 한은 전망치와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본유출입 추가 대책 필요성 낮아져=평소 환율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던 그이지만, 이례적으로 원화가치에 대한 평가도 내놓았다. 그는 "현재까지는 잘되고 있다"며 "우리 시장이 비교적 펀더멘털이 건전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영향을 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계심을 낮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총재는 이어 "환율이 저평가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현재는 제도적으로 새로운 자본유출입 강화대책을 만들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번 달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발표문에 처음으로 "해외 위험 요인의 전개상황 및 영향에 '깊이' 유의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만큼 미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긴장감이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 총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내년 상반기 전후로 끝나고 출구전략(금리 정상화)은 미국경제가 급속도로 회복되거나 어려워지지 않는다면 2016년쯤 하게 될 것"이라며 "유로존ㆍ영국ㆍ일본 등 나머지 나라는 미국보다 늦게 출구전략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한참 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신흥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조정에 나설 수 있는 시점이 내년 상반기 이후가 돼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ㆍHSBC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내년 3ㆍ4분기 기준금리 2.75% 인상을 점쳤다. 김 총재는 "우리나라 금리도 시장금리와 정책금리가 잘 조화를 이뤄갈 것"이라며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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