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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초대석] 박호군 과학기술장관
입력2003-06-08 00:00:00
수정
2003.06.08 00:00:00
대담: 김준수 정보과학부장 jskim@sed.co.kr
취임 초부터 현장행정을 활력적으로 펼치고 있는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은 최근 집무실과 접견실 위치를 바꿨다. 장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좀더 좋은 전망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다. 박 장관은 “활기찬 사회가 되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이 구석구석 자리잡아야 한다”며 “구조조정 등으로 과학계에 쌓인 마음의 상처와 불신을 씻고 서로간 인식의 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집무실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의 선봉에 선 박 장관을 만나 이공계 기피현상 및 지방과학 혁신 해법,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 구상 등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100일이 지났습니다. 연구현장 중시 행정을 펼치고 있는데 성과는 있는지요. 또 현장의 요구사항은 무엇인지요.
▲대략 열흘에 한번꼴로 대덕연구단지 등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조찬간담회 등을 통해 연구원장은 물론 팀장, 일반 연구원들을 직접 만났어요. 가장 큰 성과라면 정부와 과학자간 거리를 좁혔다는 사실입니다. 또 정책 수요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과학자와 정부, 과학자와 장관은 먼 것처럼 느껴져왔습니다. 직접 만나 보니 오해도 있고 좋은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연구원들은 한마디로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있었어요. 환란 당시 연구인력을 가장 먼저 줄였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는 스스로 위치를 지키겠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도 적극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동북아 R&D 허브와 관련, 인천 송도 유치설이 나돌면서 대덕 쪽에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연구원들과 계속 이야기해 오해와 불안을 제거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송도는 물류의 중심이고 대덕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죠. 물류가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R&D는 더욱 중요합니다. 경쟁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송도는 아직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습니다. 반면 대덕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 R&D의 일번지 아닙니까. 오는 12월이면 대덕연구단지 출범 30주년이 됩니다. 실용화를 염두에 둔 R&D 개념인 R&D 특구로의 육성계획을 담은 새로운 비전을 선포할 계획입니다.
-결국 우리가 동북아 R&D 허브가 되려면 어떤 조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합니까.
▲다국적기업들은 이미 연구개발 환경이 양호한 나라로 연구개발 거점을 이전하고 있습니다. 유치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 과학두뇌와 최신 연구시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덕연구단지와 같이 여건이 성숙한 과학단지를 세계적인 연구단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지역은 대덕 수준에 도달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과기부 내 별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놓았습니다. R&D 허브와 연계되는 지역에는 법인세ㆍ취득세ㆍ등록세 감면은 물론 우수과학자 정착비 지원, 인건비 지원, 고가 대형 연구시설 및 장비 확충 등 혜택이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R&D 투자의 효율성이 낮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으며 최근 포스트-반도체 프로젝트 등도 다른 부처와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는데.
▲기업 연구소를 포함해 우리나라 연구인력은 15만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핵심 연구인력은 2만명 정도에 그칩니다. 다국적기업 1~2개의 연구인력에 불과한 것인데 결국 베스트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베스트팀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베스트팀을 만들어주고 연구비가 아닌 연구결과로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연구과제를 정부가 공시하고 연구소 또는 개별 연구원이 제안서를 보내 선정되는 보텀업(Bottom-up) 방식보다는 국가에서 큰 방향을 설정하고 전문가를 동원, 베스트팀을 만들어주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효율적입니다. 이것은 21세기 과학계의 큰 흐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포스트-반도체 프로젝트입니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복안은 있는지요.
▲이공계 기피현상이 환란 이후 더욱 심화됐는데 보수도 보수지만 직업의 안정성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과학자도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됐어요. 환란 이후 이것이 61세로 낮아지고 또 불안하기까지 하니 기피현상이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공제회사업을 시작하고 연구원 무정년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평소 과학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지원도 중요합니다.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제2의 과학기술 입국 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개념과 비전은.
▲최근 1일교사 활동에서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과학자는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창의적 발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꿈과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위대한 사람, 우리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사회의 주요 문제가 과학기술로 해결되고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과학기술이 핵심요소로 활용되며 모든 부처가 과학기술을 정책의 핵심인자로 인식하는 그런 사회가 과학기술 중심사회입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과학문화 확산에 가장 열악한 곳이 지방이 아닌가 싶은데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사실 지방이 더 문제입니다. 지방대 이공계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합니다. 당장 병역특례 지정을 늘리고 지방대와 출연연구소ㆍ산업체로 연결되는 산학연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며 지방대 이공계 졸업생의 취업지원도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버스를 이용한 이동과학교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시골에 생활과학문화센터 등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가칭 `지방과학기술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내년 중 실시되면 지방의 과학기술 진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BLK규정 등 외국에서도 유사한 법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과학기술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먼저 청소년들에게는 과학기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과학계가 상당히 빨리 발전했지만 선배들이 그린 그림은 2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를 청소년들이 그려야 합니다. 과학계에는 신뢰와 융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정부ㆍ연구소와 연구자간 불필요한 경쟁과 불신이 없지 않았습니다. 21세기 경쟁력 있는 국가를 위해서는 서로 믿고, 보완해서 나아가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과학기술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까. 신뢰와 화합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은 재임기간 중 저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합니다.
내가 본 박호군 장관
-이규철 울산대 전기공학과 교수
만약 박호군 장관에 대해 논문을 쓴다면 `수재``신사``미남` `단정함``합리적``스포츠맨``모범생`등이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그는 훌륭한 환경에서 그야말로 잘 키워진 청년이었다. 잘 자랄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은 박 장관의 어린 시절에 딱 들어맞는다. 일찍부터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는 클럽활동이라는 특이한 제도를 시행했는데 입학때 클럽을 짜게 해서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지속되게 했다. 우리는 같은 클럽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그의 비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수학, 물리 등에서 단연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배구와 농구 선수로도 활약했으며 반장으로서 리더십도 겸비한 완벽한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인천에서 서울을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운동에 별 관심도 없던 나를 끌고 당시 일본 메이지대와 고려대의 농구경기를 보기 위해 장충체육관까지 찾아갈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그는 서민적이고 소탈하다기보다는 선비풍에 가까워 남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다. 그러나 우수한 인물들에게 흔히 있는 오만함이나 독선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명랑하고 웃기를 잘하는 편이지만 요란하게 웃지는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게 되면 떠들던 사람들도 조용해지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어떤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내가 학장을 하고 있을 때 KIST 원장이던 그를 초청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강연회를 두 차례 정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강연은 학생들 보다 내게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됐다. 실험실 내의 뛰어난 과학자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정책에 관한 높은 철학과 긴 안목을 겸비한 행정가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과기부 장관으로 입각하던 날 그를 축하하기 보다 오히려 우리나라 과기부를 축하하고 싶었다.
발자취
박호군 장관은 지난 82년 KIST에 들어온 이후 줄곧 한길만을 걸어왔다. 4년동안 KIST 원장으로 재임하면서 굵직굵직한 일들을 이뤄냈다. 1인당 연구계약고를 2억원에서 4억원으로 늘렸으며 중견과학자 30명을 영입하여 20년만에 처음으로 대학에서 연구소로 우수인력이 이동하는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순수 과학자이면서도 경영마인드가 뛰어난 점은 또다른 장점이다. 이것은 광범위한 독서에 기인하는 데 박 장관은 독서를 `취미`라기 보다 `삶의 필수`라고 말한다. 경영마인드 역시 독서를 통해 스스로 형성했는데 KIST 원장 시절 그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출연연구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6시그마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삼성을 비롯한 56개 기업과 함께 참여한 기술협력컨소시엄을 구축, 해외 유명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를 유치하는 데 기여했다.
취임이후 과학기술계의 신뢰회복을 줄곧 강조해 오고 있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간 불신을 없애고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화합을 위해 10일에 한 번꼴로 연구현장을 방문하고 조찬간담회 등을 통해 연구원과 기업인들을 수시로 만나고 있다.
박 장관을 옆에서 지켜 본 사람들은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업무를 추진하는 열정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제2의 과학기술입국 등 중대한 임무를 맡은 박 장관이 이공계 기피와 과학자의 사기진작, 지역균형발전 등 산적한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 약력 >
▲47년 서울 출생
▲70년 서울대 화학과
▲75년 미 일리노이대 이학석사
▲80년 미 오하이오주립대 이학박사
▲82년 KIST 연구원
▲99년 KIST 원장
<정리=조충제기자, 사진=이호재기자 c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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