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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시장 시한폭탄 '헤지펀드' (중)
입력1998-09-29 18:36:00
수정
2002.10.22 02:29:00
【뉴욕= 김인영 특파원】 파생상품 이론가였던 마이런 스콜스씨와 로버트 머튼씨는 옵션 거래에 관한 수학공식과 이론을 정리,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들은 부상으로 받은 100만달러에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헤지펀드에 넣어놓고 새로운 파생금융상품 기법을 개발, 펀드 매니저에게 제공했다.
월가의 전설적 채권전문가인 존 메리웨더씨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만든 복잡다기한 공식을 이용해 뉴욕 월가와 유럽 은행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차입했다. 자산 23억 달러의 펀드가 자산의 100배에 가까운 2,000억달러의 자금을 빌려 투기에 나선 것은 바로 이 파생금융상품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투기에 참여, 국제금융질서를 교란한 것은 인류 평화를 염원하는 노벨상의 취지에 어긋나므로 그들의 영광을 반납하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건은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거대한 댐에 큰 균열을 만들었다. 헤지펀드들은 금융당국에 결산보고를 하지 않는다. 특히 롱텀 펀드의 경우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공식을 사용,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롱 텀 펀드의 자금동원 규모를 현재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정밀한 분석을 통해 이 헤지펀드가 1조2,500억 달러의 파생금융상품을 일으켰다고 보도했고, 타임지는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진단했다.
전세계 파생금융상품 규모는 25조~30조 달러에 이른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규모다. 롱 텀 펀드가 일으킨 1조달러의 파생금융상품은 중국의 연간 GDP에 해당한다. 미국 헤지펀드의 연쇄 파산이 국제금융시장에 몰고올 위험은 여기에 있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28일 LTCM 사건으로 유동성 경색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루빈의 말을 믿지 않는다.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자산을 수십, 수백배로 핵분열시킴으로써 호황기에는 자본 유통속도를 가속화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거꾸로 암세포의 핵분열을 가속화함으로써 죽음의 게임을 확산시키는 역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의 위기는 이미 연초 JP 모건과 한국의 SK 증권 사이에 벌어진 5억달러 규모의 법정소송에서 그 단초를 보였으며,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확산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금리와 환율, 주가의 극심한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 금융자산 운용수익을 증대하기 위해 개발된 금융기법으로, 자본시장이 국제화하면서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은 계약 상대중 한쪽이 위험을 피하려면 다른 쪽은 위험을 안아야 한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시장이 안정되고, 일정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서 공식이 성립된다. 수십년 동안 반복된 주기와 산술평균을 파악, 컴퓨터에 입력시킴으로써 상품의 안정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천재지변이나 전쟁과 같은 비시장적 요소가 발생할 때 공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롱 텀 펀드의 컴퓨터와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과 아시아 국가의 자본통제라는 「상상할 수 없는」 가정에 대비하지 못했다. 이들은 루블화와 달러를 옵션거래 방식으로 안전판을 만들고, 이를 월가 은행에 스왑 거래를 체결함으로써 수천억 달러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옵션 거래든, 스왑 거래든 일체의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지불정지를 선언했다. 롱 텀 펀드가 물리고, 이에 따라 월가의 은행과 유럽 은행들이 물리는 연쇄반응이 나타났고, 그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월가의 내로라하는 뱅커들이 뉴욕 FRB에 모여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롱 텀 펀드를 구제하기로 한 것은 거대한 댐의 붕괴를 방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은행들이 수익율이 낮은 대출보다는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해 세일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얻으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JP 모건의 경우 지난해말 현재 6조1,430억 달러의 파생금융상품을 안고 있는데 이중 10%만 부도가 나도 자산을 모두 쓸어넣어야 할 형편이다.
미국은행들에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올 파생금융상품의 규모가 10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롱 텀 펀드의 파산위기가 전체 파생금융상품 시장에 주는 충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월가 은행들은 롱 텀 펀드의 파산을 일단 막았으나, 다른 헤지펀드의 파산을 더이상 구제해줄 수 없다.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시한폭탄처럼 국제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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