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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사태속의 임·단협(사설)
입력1997-08-02 00:00:00
수정
1997.08.02 00:00:00
올 노동현장은 여러가지로 특기할만한 해로 기록 될 것같다. 봄철부터 일기 시작한 「무교섭」 「무인상」 「무분규」 등 소위 「3무 바람」이 금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에 새로운 풍토로 자리잡은 것이다. 예년 같으면 사업장마다 노사간 대결로 한번씩은 치렀을 홍역도 이번 춘투에선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불황 탓이라긴 하지만 실로 바람직한 현상이다.노동부에 따르면 임금교섭 지도대상인 1백인 이상 사업장 5천7백54개사 가운데 지난 7월말 현재 60.8%인 3천5백1개사가 임금교섭을 타결했다. 진도율은 작년에 비해 다소 느리긴 하지만 협약임금 인상률은 통상임금 기준 4.2% 수준이다. 전년도의 7.7%보다 크게 낮아 임금 안정화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임금동결은 6백41개사(전년동기 1백60개사), 무교섭타결은 1백94개사(〃35개사)에 달한다.
사실 올 임·단협은 시즌 초에는 불안요소가 많아 우려되는 바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새 노동법이 지난 3월 국회에서 통과돼 사업장마다 교섭이 예년에 비해 2개월 정도 늦어진 것이다. 5월부터 시작된 임·단협은 여름휴가를 넘겨 장기전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노조전임자 수와 급여 축소도 핫 이슈였다. 새 노동법에 규정된 단체교섭권의 상급단체가 아닌 제3자 개인위임 규정도 불씨였다.
그러나 대그룹들의 잇따른 부도사태와 경기불황은 노사관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지하철과 통신 등 주요 공공부문이 벼랑끝 대치에서 자율타결로 돌아선데 이어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현대중공업 등 민간대기업이 무분규로 마무리 지었다.
협상은 항상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유리하다고 해서 상대방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 세워서도 안된다. 그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임·단협 관행은 노사 모두 상대방이 백기를 들어야 끝을 맺는 식이었다. 「전체 아니면 안된다」(All Or Nothing)는 자세야말로 협상에서는 가장 위험한 것이다.
올 임·단협은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노사 모두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제 몫 챙기기에만 급급한다면 그 기업이 잘 될리가 없다. 미국이 실업률이 낮고 몇년째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노조의 힘이다.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인식, 제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5년이나 계속된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노조에 있다. 기업이 있어야 노조가 있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반대는 유럽이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이 모두 10%가 넘는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난 봄 총선에서 정권이 바뀐 것도 높은 실업률 탓이다.
올 노사간의 새 풍속도를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 활성화의 밑받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단협의 새 관행으로 정착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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