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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3-1.파트너십 착근이 우선이다
입력2003-02-11 00:00:00
수정
2003.02.11 00:00:00
“노사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할 토대(신뢰관계)가 먼저 정립돼야 한다”
본지가 수 차례에 걸친 설문과 취재를 통해 한국의 노사문화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선결 과제를 물었을 때 나온 한결같은 응답이다.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에서 노조 지도자, 정부관계자, 학계 전문가 등이 이구동성으로 `노사간 파트너쉽 착근`을 한국 노사문화 선진화에 첫번째 과제로 답했다.
하지만 한국 노사문화 현실은 싸늘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근로자의 56.5%, 사용자의 54.6%가 노사간 신뢰정도에 대해 `낮은 편`또는 `매우 낮다`고 답변했다. `그저 그렇다`는 답변이 양쪽 모두 35% 안팎이어서 신뢰도가 `높다`고 응답한 근로자나 사용자는 10%에 그쳤다.
제도가 아무리 발달해도 노사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대방이 사리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파트너쉽)을 갖고있어야 `일류 기업, 선진 노사관계`가 출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영정보 공유가 첫걸음=전문가들은 노사가 회사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는 것이 노사간 대화의 시작이라고 진단한다.
동시에 양측이 경영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사측이 맞는 말을 해도 정보가 없는 노동자는 이를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근로자가 경영정보에 무지하면 결국 단체교섭에서 이해와 타협보다는 투쟁과 대립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노사간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영정보의 미공개`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8년 연속 무교섭으로 임금협약을 타결한 LG칼텍스가스의 경우, 분기마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설명회를 열고, 노ㆍ경 워크숍을 개최해 사원들에게 경영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사원은 “최고경영자만큼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사가 임금이나 복지혜택을 경영사정에 비춰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정보 공유와 관련 김 교수는 “노조나 노조원이 회사 경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쏟고 회사정보나 기밀을 누설하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신 허물 리더쉽 출현해야=노사 양측이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잘 알면서도 실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상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못하는 것이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이다.
노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불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자홍 LG전자 회장(당시 사장)은 대표로 취임하던 당시 현장마다 다니면서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을 역설했다. “임원들이 종업원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경영에 임하라”고 지시해 관리자들이 근로자들을 대하는 기본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생산직 노조원들은 구사장에게 구두를 선물하면서 `더욱 열심히 현장을 다녀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배일도 서울시 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노조 지도자가 화합의 물꼬를 틀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배위원장은 초대 위원장을 지낼 때 만 해도 강경투쟁의 상징이었지만 지난 99년 새로 지하철 노조를 맡으면서 2000년 1월 `무쟁의`를 선언, 수년간 무파업 기록을 이어갔다. 배위원장은 “힘겨루기는 국민과 국가만 피해자가 될 뿐”이라며 “노동계도 기업과 국가운영의 큰 틀에서 여러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해 노조 운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한 사람에 의존하는 개인적 리더십은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개인 의존도가 높아서는 항구적인 노사간 신뢰구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마디로 제도적 리더십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정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개인의 리더쉽에서 싹튼 신뢰감을 규칙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며 “기업이 근로자를 인적자본의 투자 대상으로 보고 교육에 힘을 쏟아야 노사간 파트너쉽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풍산, `분규 대명사` 오명 씻고 세계 초일류기업 우뚝
대규모 분규로 회사 존립마저 위태로웠던 기업이 노사갈등을 신뢰 구축의 기회로 만들어 오히려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銅) 전문 생산기업인 ㈜풍산은 87~90년 반복된 파업과 이에 맞선 사측의 직장폐쇄 등으로 경영상태가 크게 악화됐으나 노사화합으로 이를 극복하며 지금은 세계 3대 신동기업으로 올라섰다.
풍산의 극심한 노사대립(표참조)은 역설적으로 신뢰구축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됐다. 비극을 교훈삼아 노사가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필요성에 절실히 눈뜨게 된 것이다.
풍산이 맨 먼저 힘쓴 것은 경영정보의 공유. 89년 발간하기 시작한 경영현황 책자를 기초로 풍산은 90년대 들어 매 분기마다 사업장별로 경영설명회를 개최했다. 류진 회장은 직접 사업장을 방문, 노사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하며 `한 배에 탄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했다. 노조도 이 같은 노력에 신뢰감을 보냈다. 류 회장은 노조에게 회사정보와 경영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회사발전과 성과창출이 공정하게 배분될 것”임을 강조했다. 또 임직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90년부터 장기근속사원 부부동반 해외연수를 실시했다. 현재까지 2,200쌍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노조 역시 사측의 꾸준한 노력에 화답, 지난 2000년 `노사협력선언`을 대내외에 공포하며 `항구적 무쟁의ㆍ무파업`을 선언하고 단체협상을 회사에 위임했다. 정명수 노조위원장(2000년 당시)은 대의원대회와 조합간부 모임 등을 통해 “회사를 믿고 자발적으로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나서면 상응하는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며 사측에 견고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풍산은 지난 10여년간 자율 구조조정을 펼쳐 연평균 1인당 생산성 증가율 18.2%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또 매년 사상 최대 판매량을 갱신하고 있다.
이문원 사장은 “노사관계에는 지름길이 없다”며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고 꾸준히 대화하는 것만이 노사 신뢰를 구축하는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성과배분제와신뢰구축] 합리적 배분기준 마련못하면 노사갈등 오히려 부추길수도
노사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으로 `성과배분제`가 각광을 받고 있다. 선언적 노사 협력보다는 눈에 띄는 실체로서 신뢰관계를 강화해 가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성과배분제가 동기부여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신뢰는 고사하고 노사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노동부가 조사한 성과배분제 도입실태에 따르면, 97년 이전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5.7%에 불과했다. 이후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과 임직원의 자발적인 업무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제도 도입에 나서 지난해에는 전체 조사기업의 23.4%, 30대 그룹사의 50.2%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성과급제 도입이 늘면서 배분을 놓고 노사간 이견 표출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현대자동차 노조는 일방적으로 이익의 30%를 나눠주도록 사측에 요구, 노사갈등을 빚었다. 환차익 등 영업외 이익으로 실적이 나아진 정유업계는 노조가 무리한 성과배분을 요구해 기업의 총수나 대표가 직접 나서 노조를 설득하기도 했다. 박우성 중앙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성과배분제는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경영목표를 노사가 설정하고 이를 달성했을 때 합리적으로 성과를 나눠야 신뢰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게임업체 넷마블은 성과배분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직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낸 좋은 사례다. 2001년 50여개의 군소 게임업체가 각축을 벌여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에 방준혁 사장은 대주주가 제시한 성과급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기로 해 목표를 공유했다. 그리고 지난해 목표이익을 100억원 이상 초과 달성했다. 넷마블은 이 달 중 120여명의 직원에게 1년 연봉을 성과급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이경범 경영자총협회 전문위원은 “사측이 세부적인 경영정보를 노조에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조역시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배분 몫을 요구해야 성과배분제가 노사신뢰의 선순환을 만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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