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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 규제에 멍드는 휴대폰 강국] <상> 시장 외면한 단말기 정책

"영업비밀까지 공개하라" 도넘은 간섭… 소비자 선택권은 뒷전<br>유통구조 개선도 좋지만 판매 위축 불가피<br>마케팅 비용 늘어 제품값만 더 오를 가능성<br>판매보조·장려금 등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정부가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사실상 영업비밀인 보조금 지급 명세와 단말기 판매량, 출고가를 제출하도록 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추진하고 있다. 올 정기국회 통과가 목표다. 명분은 휴대폰 유통구조 개선. 그러나 업계가 이례적으로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의 단말기 유통시장 개입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제라는 주장이다.

특히 국내 휴대폰 시장이 포화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규제를 추가한다면 산업 위축으로 관련 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업체들까지 몰락하고 대량 실직이 불가피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펼치면 규제라는 명분에 둘러싸여 제조사와 소비자에게 오히려 피해만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단말기 산업에 미치는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올 초 정부 규제가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동통신사가 매달 공급하는 휴대폰 규모가 월평균 200만대 수준에서 150만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보조금 규제 강화로 단말기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국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의문이고 보조금ㆍ장려금 등의 문제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가장 좋다"며 "특히 법 개정으로 소비자에게 이익보다 구입비용 부담만 증가시키는 시장 왜곡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다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헛바퀴 돌 우려 많은 법 개정=이번 법 개정의 핵심은 보조금 문제 해소를 위해 사후규제는 물론 강도 높은 사전규제 카드를 만들겠다는 것. 이를 통해 단말기 유통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소비자가 합리적 보조금을 통해 단말기와 요금에 대한 정당한 할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통사는 물론 소비자ㆍ제조사들이 모두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고 있는 법안이라는 얘기다. 이통사와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케팅비용과 구입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실제로 정부의 휴대폰 시장 옥죄기가 강해지면서 고가의 신형 휴대폰이 단속을 피해 새벽 시간에 스팟성 방식으로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버스폰이 대량으로 유통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가격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는 손해를 보게 되면서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규제가 아니고 오히려 선택권을 제한하는 시장 왜곡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위적인 시장개입 오히려 족쇄=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수출한국의 버팀목인 휴대폰 산업이 국내외 시장 상황 악화로 경고등이 켜진 처지인데 '단말기유통법'이라는 또 하나의 정책을 들이댈 경우 시장 위축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등 4개 협회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건의문을 통해 법률로 판매장려금 등 핵심 영업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반시장 입법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ㆍ방송통신위원회에 미래창조과학부까지 가세하는 2중, 3중의 중복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등 문제점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의 대표적 실패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은 2007년 단말기 가격과 요금제를 분리하고 보조금 상한선을 두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여파로 일본 휴대폰 시장규모는 2007년 5,200만대에서 이듬해 3,800만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27%나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도 4,400만대로 규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샤프와 후지쓰ㆍ파나소닉ㆍNECㆍ소니 등 일본 휴대폰 시장 상위 5대 기업의 휴대폰 판매량도 2009년 2,460만대에서 지난해 1,960만대로 20% 이상 줄었다. 특히 NEC와 파나소닉은 결국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을 뗐다. 단말기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글로벌 스마트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으로 국내 시장이 축소돼 일본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라며 "우리가 이 같은 절차를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중복규제의 칼을 빼들면서 국내 단말기 제조업은 벌써 위축되고 있는 상태다. 올 3ㆍ4분기 세계 판매량 순위가 14위에서 15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단말기 판매량도 지난해 3ㆍ4분기 1,400만대에서 올해는 1,15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 선택권 빼앗는 정부=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게 반시장적이며 되레 소비자 선택권을 빼앗아갈 뿐이라는 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바로 알 수 있다. 일본은 규제 이후 휴대폰 거래가 40% 이상 급격히 줄었다. 이를 국내 시장에 반영하면 전국 3만여곳에 달하는 휴대폰 판매ㆍ대리점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대리점과 판매점에 고용된 수만명, 수십만명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릴 수 있다.

무엇보다 단말기에 붙는 보조금을 없애면 단말기 가격은 오히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비자들의 구입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국민들의 이용후생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 법안의 원래 취지인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도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면 법인세수도 줄어들 수 있다. 이는 세수확충을 통한 복지재원 마련에 노심초사하는 정부로서도 반갑지 않은 일이다. 세수확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세계에서 보조금 공개를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글로벌 경쟁을 하는 기업에 부담을 주고 소비자에게 구입비용 부담을 주는 규제라면 명분도 약하기 때문에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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