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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노근리 사건의 메세지

다음 순간 우박같이 기관포탄이 쏟아졌다. 몇 번을 순회하며 기총소사를 하던 전투기가 「작전」을 완료한 듯 멀리 사라졌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피격된 것을 알았다. 턱밑에서 피가 흘렀다. 여기저기서 아우성 소리가 들리고 몇몇 생존자들이 동네를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 비극의 들판에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순수한 민간 피난민이었다.6·25전쟁 이후 반세기가 흘렀다. 이제 전쟁의 상혼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숱한 비극과 진실조차도 시간이라는 암실 속으로 사라진 듯 했다. 그런데 노근리에서, 마산에서, 창녕에서 스물스물 진실이 살아나고 있다. 인화돼 나오는 필름은 새삼 처절했던 비극의 현장을 재현시키고 있다. 그리고 성조기와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묻게 한다. 어리석게도 삼성리의 경우도 그랬다. 피난민들은 미국은 우리편이니까 들판에 묻혀 있으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군 전투기 편대가 자신들을 목표로 들이닥쳤을 때도 그들은 흰 천 조각들을 흔들어댔다. 「백기」를 흔들어대던 한 할머니가 직격탄을 맞고 쓰러진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금기의 영역들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사건을 세계에 타전한 AP통신의 보도는 매몰된 진실 하나를 망각의 역사 속에서 건져올린 특종에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줄기와 뿌리에 얽힌 엄청난 「역사와 진실」탑사에 커다란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미리부터 「반미 경계론」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본질을 모르는 소리 같다. 미리 금줄을 그어놓은 진실 규명은 한계가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은 한 국가의 지성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반미 경계론」은 진상과 탐구 다음에 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비단 남북문제가 걸려서만이 아니다. 지금쯤은 미국을 정확한 눈금으로 가늠해 두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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