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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김태호초대전 금호미술관

『유난히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났던 어느 늦봄. 친구 노릇을 해주던 소가 개울언덕에서 미끄러져 그만 죽고 말았다. 김을 매시던 할머니는 개울가 언덕을 곤두박질치듯 내려오시며 우셨다. 눈물 때문에 민들레들은 그냥 노란색으로 번졌다.』다소 몽환적이고 서럽게 느껴지는 이 단상은 화가 김태호(47·서울여대 교수)의 기억에서 훔쳐온 것이다. 친구같았던 소의 죽음, 쭈그렁 할머니의 설움, 그리고 지천이 모두 노란색으로 변하는 충격. 피고 피고 또 피다 제풀에 지쳐 사라지는게 들꽃이 아니던가. 욱신거리는 뒷골의 그 궁벽진 곳에 숨어 있는 기억. 작가는 그것들을 추체험적으로 파고들어가다 어느새 탁 트인 고향의 산과 들을 마주한다. 하기사 고향집 앞에 놓인 징검다리 역시 그와 밖의 세계를 이어주면서 동시에 갈라놓은 상징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작가는 개똥벌레의 꼬리처럼 사라져가는 기억의 단상들을 모아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9일 서울 금호미술관(02~720-5114)에서 문을 열어 7월4일까지 이어지는 김태호초대전은 이처럼 유년의 기억이 조각조각 찢어져 형상화된 현장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평면 이상의 것들이 등장한다. 오브제와 조각 그리고 사진등 다양한 질료를 통해 김태호는 사물의 편린들을 주어모은다. 대형 캔버스 안에 등장한 소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전시장 한복판에는 징검다리나 민들레의 변형으로 노란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덩어리가 등장한다. 그것이 장수하늘소였던가. 아니면 녹색으로만 기억나는 풀밭이었던가. 빼곡이 벽면 한쪽을 채우며 올라가던 상자들 옆에는 노란 기억이 서성이고 있다. 기억에는 어쩔 수 없이 아직 살아있는 것들과 이미 사라진 것들이 혼재한다. 그것들이 김태호의 작업 속에서 서로 만나니, 작가는 인연의 그 질긴 힘을 믿고 또 믿고 있는 듯하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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