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가치 제고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은 불확실한 경제 여건으로 현금성 자산을 재투자보다는 주가 부양 차원에서의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가에서는 현금성 자산과 유보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투자가 유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융기관을 제외한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의 지난해 4·4분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총 118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3·4분기까지만 해도 국내 상장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60조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4·4분기부터 급격히 증가하면서 현금성 자산이 상장 기업 총 자산 대비 5.3%에 이르며 시가총액 대비 12% 수준으로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4·4분기 기업 이익 증가와 더불어 올해 금리 상승 전망에 따른 회사채 발행 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국내 상장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경기 회복 전망이 불투명해 설비투자 등 재투자에 나서는 비율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재투자의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 개선 등에 대한 전망이 확실해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이 같은 실적 개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금성 자산은 늘고 재투자는 그대로라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가 부양 정책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상장기업의 배당성향이 낮아져 있는 점도 배당에 더욱 많은 자금을 사용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국내 상장 기업의 배당성향은 24%까지 올라갔지만 지난해 배당성향은 18%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재만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의 지난해 재투자는 57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 증가하는 데 그쳤다"며 "올해 다소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낮아진 전세계 경제성장률을 감안할 경우 2003~2005년(평균 20% 증가)과 같이 크게 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005930)나 현대차(005380)와 같이 현금성 자산 비율과 유보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시총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이 7.1%에 달하는 가운데 3년 평균 유보율이 1만4,091.5%에 달한다. 3년 평균 배당성향도 6.2%에 불과하다. 또 현대차와 유한양행(000100)·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종근당홀딩스 등도 시총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이 10%에서 많게는 38%까지 달해 앞으로 배당성향을 높일 가능성이 높은 종목으로 분류된다.
이 연구원은 "기업의 배당성향이 크게 높을 필요는 없지만 배당을 해봤던 경험이 있는 기업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기업의 배당성향이 18%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경우 이와 유사하거나 수치가 다소 낮은 기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국내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8~9%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기업의 ROE가 낮아지면서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을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연기금이 지난해 운수창고업체인 세방에 대해 현금성 자산만 쌓아두고 배당성향을 높이지 않자 주주총회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며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의 배당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기업의 배당성향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